언어는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환경과 만나, 그 소속원으로 성장해가는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개인의 욕망·성향·습관과 언어구조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과 협상, 생산과 재생산의 역학이 작동한다. '여자'와 관련된 말들이야말로 언어의 일반적 구조와 개인의 욕망 사이에 펼쳐지는 이러한 드라마를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예를 들어 '자유부인'이나 '신여성', '아줌마' 등을 살펴보자. '자유부인'이란 단어는 동명의 소설과 영화가 탄생했던 195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깊은 파장을 지니며 다면적인 의미효과를 내고 있다. 당시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춤바람 난 유부녀와 동일한 단어였던 '자유부인'은 한국사회가 몸살을 앓으며 욕망하던 '신세계'의 자유, 평등, 독립의 가치가 자유롭게 춤추며 기쁨을 누리는 여성의 몸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
왜 하필이면 여성의, 그것도 결혼한 중년여성의 몸을 빌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사회에서 결혼한 중년여성이야말로 가장 자유롭지 못한, 가장 완고한 전통적 규범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년여성의 반란, 탈주야말로 가장 놀라운, 가장 전복적인 행위이다.
이 같은 중년여성의 역동적 위치는 그러나 1990년대의 중년여성들인 '아줌마'가 적극적인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할 때까지 잠시 표층에서 지워져야 했다. 청년문화가 부상하던 1970년대에는 '경아', '영자', 그리고 '이화'로 대변되는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대중문화 속의 아이콘으로 등장해서 당시의 정치·경제적 풍경을 대변했고, 정치적인 것이 여타의 모든 감수성을 침묵케 했던 1980년대에는 술집 문화와 조폭 문화의 범람 속에서 여성의 대중문화 속 등장 자체가 철저하게 주변화 되었기 때문이다.
중년여성 이미지가 다시 놀랄만한 힘으로 사회변혁의 흐름을 조정하는 위치로 떠오른 것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다. 비록 중년여성의 탈선이라는 식으로 단순화되기는 했어도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진 '위기의 여자'는 중년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대의 고민으로 연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대, '아줌마'라는 범속하기 짝이 없는 제목을 달고 진행된 드라마는 실제 여성관객들과 흥미로운 연대를 맺으며 이제까지 범속과 추함의 범주 속에 갇혀있던 중년여성들의 저항적 힘과 유머, 관대함, 성적 매력을 한껏 가시화했다.
이제 중년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가 자신들에게 부과한 고정된 자리를 다양한 욕망과 기획이, 성공과 실패가 부딪치는 생성의 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신여성'과 '자유부인', 그리고 아줌마의 특성들이 그들 육체속에 함께 공존하고 '위기의 여자'와 '담배피는 여자'도 이역동적인 생성속에서 변화되고 있다. 이들이 탄생시킬 새로운 전략들, 새로운 삶의 모습들이 기대된다.
/김영옥·대중문화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