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대통령 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문제와 명예훼손 여부를 둘러싼 소위 '병풍(兵風)'수사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병풍수사는 최근들어 일부언론이 김대업(金大業)씨의 테이프가 조작됐음이 드러났다며 단정적으로 보도하자 검찰이 "아직 수사중"이라며 이를 부인하면서 검언(檢言)갈등 양상으로 비화했다. 또한 이 와중에 검찰내부에서도 수사방향과 종결시점등을 놓고 파열음이 불거질 조짐이 나타나고있다. 대통령 선거일인 12월19일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2개월여. 11월27일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대선시계'를 감안하면 "검찰이 정치권과 언론등의 눈치를 보며 병풍사건을 너무 끌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언론의 대(對)검찰 '대리전' ?
수사초기 법조계는 물론 언론계 내부에서 조차 병풍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친여,친야, 중립으로 3등분 되어있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나돌았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이 같은 언론의 대리전 양상은 더욱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일례로 김대업씨가 제출한 녹음테이프의 진위여부에 대해 대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성문분석이 진행중인데도 일부 신문은 "조작되었다"고 단정적으로 전하며 검찰이 김씨를 사법처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또 다른 신문에선 "(2차 테이프가)의도적으로 편집된 흔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정반대로 보도했다. 수사팀에선 "도대체 왜 이러느냐"며 "언론 때문에 걱정"이라고 항의하고 있다. 특히 일부 신문들이 융단 폭격식으로 수사결론을 섣불리 추정보도하며 검찰에 무형의 압력을 넣는 양상을 보이는 데 대해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진실은 하나인데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실관계에 대한 보도조차 제각각이라면 국민들만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화(禍)를 자초하는 검찰
혼돈스런 언론보도에 대해 검찰 책임론도 제기된다. 검찰은 병풍 사건을 둘러싼 주요 쟁점들 수사결과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을 밝혀왔다. 병적 기록표 위·변조 여부에 대해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고, 정연씨 관련 금품수수설에 등장하는 병무청 유학담당 직원들을 이미 오래전 조사했으나 "수사 내용은 밝힐 수 없다"는 비밀주의로 일관해 온 것. 검찰은 "주요 조사 내용 공개가 수사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나 내면에는 "여야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결국 이런 검찰의 행태는 '여론과의 단절'을 낳아 수사결과에 대한 의혹을 부풀렸고, 추측보도의 근거가 된 셈이다.
■어수선한 검찰 분위기
대검 간부들은 이명재(李明載)검찰총장에게 "원칙론을 지키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든 야든 의식할 필요없이 나오는 결론을 그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건의의 이면에는 검찰 조직 내부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담겨있다. 실제 일선 검찰에선 시간끌기 인상을 주는 수사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으며 수사팀 내부에서도 정치 성향에 따라 인식차가 나타나고있다. 법조계에선 "이러다가 'DJ비자금' 수사등의 문제로 검찰 내부가 크게 흔들렸던 97년 대선 때의 상황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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