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년 10월3일 가톨릭 수도사 성(聖)프란체스코가 44세로 선종(善終)했다. 성프란체스코는 고향이 이탈리아 움브리아주(州) 페루자현(縣)의 아시시여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라고 불린다. 그가 1223년 고향에 창설한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교황청에서 베푸는 특권들을 모두 거부하고 청빈한 삶을 통해 교회에 봉사하며 수많은 성인·복자·추기경들을 배출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성프란체스코는 10대에 향락 생활에 빠지기도 하고 기사가 되겠다는 꿈을 지니기도 했지만, 20세 들어 회심한 이후 재산을 버리고 평생 수도에 정진했다. 그는 여러 편의 뛰어난 시를 남겨 '신(神)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성프란체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마음가짐의 한 지표로서 음미해볼 만하다.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어두움에 빛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주여,/ 진실로 바라옵나니/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자 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신을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시시를 교회사의 중요한 지명으로 만든 가장 큰 공로는 성프란체스코에게 돌아가야겠지만, 그 공로를 동향(同鄕)의 제자였던 클라라 성녀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6세 때 우연히 성프란체스코의 설교를 듣고 감복해 그의 제자가 된 클라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1243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클라라 관상(觀想)수녀회를 만들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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