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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58)국민당 총재시절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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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58)국민당 총재시절⑫

입력
2002.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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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대회를 앞두고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고조된 9일 또 하나의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다. 연세대 교내 시위 도중 이한열(李韓烈)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중태에 빠졌다.6월10일 나는 연세대 부속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학교 앞은 6·10 대회에 참석하려는 학생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의 격렬한 대치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나는 병원 관계자들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중환자실로 찾아 갔다.

이군은 산소 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었다. 뇌 기능이 많이 상실된 상태여서 이미 회복은 불가능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면 나를 포함한 이 나라의 모든 정치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6·10 국민대회는 예정대로 치러졌다. 국민운동본부는 전국 22곳에서 호헌 철폐와 고문살인 은폐 규탄대회를 열었다. 대회를 막기 위해 무려 5만여명의 경찰이 동원돼 시위대와 대치했다. 시위대의 호헌 철폐, 독재 타도 구호가 전국 곳곳에서 울리고 최루탄 연기가 서울 도심에 자욱했다.

이날 시위는 3,831명이 경찰에 연행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시위 현장을 지나 가던 차량도 경적을 울려 학생들의 시위에 동조했고, 시민들은 박수로 시위 학생들을 격려했다. 마침내 재야 운동권이나 학생 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까지 반독재 투쟁의 대열에 동참한 셈이었다. 6월 민중항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도 민정당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길을 갔다. 거리에서 국민이 정권의 부도덕성을 규탄하고, 경찰과 격렬하게 부딪치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 정한 정치 일정을 그대로 강행했다. 민정당은 이날 장충체육관에서 전당대회 및 차기 대통령후보 선출식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노태우(盧泰愚) 대표가 대통령후보에 옹립됐다.

그러나 6월10일의 민주화 열기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 속에 더욱 뜨거워졌다. 시위 학생들은 이날 밤 명동성당에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이튿날인 11일 명동과 남대문 일대에서는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다시 모여 명동성당 농성을 지지하는 시위에 나섰다.

5공 정권은 그래도 강경 방침을 버리지 않았다. 민정당은 "6·10 시위 이후 서울 명동 일대가 불순 폭력 세력에 의해 해방구로 선포된 데 대해 큰 충격과 우려를 금치 못한다"는 대변인 논평을 내놓았다. 5공 정권은 마치 최후의 칼을 뽑아 들 태도였다.

나는 13일 난국 수습을 위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오늘의 위기 상황은 개헌을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를 짓밟은 4·13 호헌 조치가 근본적 원인이다. 이는 민주화에 역행하는 역사적 오류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제1야당의 장외투쟁 역시 정국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함을 지적한다. 나라가 있고 난 후에야 대통령이 있고 당이 존재한다. 이 난국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나를 포함한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른바 '합동 용퇴론'이다.

나는 수습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첫째 여야가 즉각 개헌 논의를 재개할 것, 둘째 개헌을 비롯한 현안 논의를 위한 4당 대표회담을 개최할 것, 셋째 정부는 민주화 조치를 단행할 것 등등 이었다. 회견문 발표 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 들어 갔다.

"민정당이 일방적으로 정치일정을 강행한다면 국민당은 대통령선거에 참여할 것인가" "현행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 강행은 이 나라에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 당은 이런 식의 대통령선거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합의개헌을 위한 일정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시간은 문제가 안 된다. 국민 여망에 따라 개헌을 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 당시 나의 회견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각 언론은 나의 회견 내용을 사설 등으로 다루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국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누구도 자신있게 예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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