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엔이 이라크 문제 해법을 놓고 정면 충돌하고 있다. 유엔이 1일 이라크와 무기사찰단 재입국을 위한 세부 계획에 합의, 4년 여 만에 무기사찰 재개가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미국은 2일 백악관과 의회가 무기 사찰 합의와 상관 없이 대 이라크 무력 사용 결의안에 합의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이라크에 대한 보다 강력한 제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유엔사찰단의 이라크 입국을 저지하겠다"고 반발하는 등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무기사찰을 관장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자 초강대국 미국이 반대를 계속할 경우, 사찰 자체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국제사회의 관심은 미-유엔 간 힘겨루기의 결과에 쏠리고 있다.
▶미-유엔 정면 충돌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은 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라크 대표와 회담을 마친 뒤 "기존의 유엔 결의안에 보장된 사찰단의 모든 권리를 이라크가 보장하기로 했다"며 "3일 안보리 회의에 보고할 협상결과가 승인되면 2주 내에 선발대를 파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미국은 강력한 제재를 담은 새로운 유엔 결의안이 먼저 채택되기 전까지는 이전 결의안에 기초한 무기사찰단의 이라크 입국을 저지할 것"이라며 "우리는 안보리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부장관도 "블릭스 단장은 안보리의 대리인이며 미국의 입장은 그가 결의의 형태를 띤 안보리의 새로운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안보리의 결의를 거친 사찰을 재개하는 데 현 시점에서 원칙적으로 절차상의 걸림돌은 없으나 "낡은 결의안 대신 강력한 새 결의안"을 주장하는 미국이 정치적인 방해 공작에 나선다면 사실상 무기사찰 재개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밀어붙이기 나선 부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하원은 2일 유엔과 이라크가 무기사찰 실시에 합의한 것과 상관없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겨냥한 무력사용 결의안에 한 목소리를 내기로 합의했다. 최근 이라크 공격에 대해 '나홀로 행보'를 계속해 온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일 자신의 전권 위임 요구에 견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의회를 향해 "내 손을 묶지 말라"며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민주·공화 양당 대표 명의의 결의안 수정안을 통해 미국은 유엔 결의안이 채택돼야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으며 무력사용 대상은 이라크에 한정하고 공격의 목적은 후세인 제거가 아닌 대량살상무기 해체가 돼야 한다며 대통령의 요구를 제한하고 나섰다.
미국은 1일 유엔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도 설득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은 이날 자국의 입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과 이라크가 사찰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미국은 특히 이라크가 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8개 대통령궁에 대한 무제한 사찰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블릭스 단장은 이날 "이라크와의 합의에서 대통령 전용시설에 대한 사찰 여부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한편,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이 현재 추진 중인 새 유엔 결의안에서 군사행동을 의미하는 '필요한 모든 수단'이라는 문구를 빼는 대신 프랑스 등이 주장하는 '사찰 후 공격 여부 재논의' 문구를 넣어 사찰 후 즉각 공격의 명분을 얻는 '빅딜'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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