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에 희망의 공동주택을…."1일로 수마가 마을을 할퀴고 간 지 한달이 지난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복사꽃 마을 장덕2리. 자갈로 얼기설기 메운 길이 위태롭게 이어져 있고 마을 초입의 마을회관은 45도 가량 기울어 금방 개천에 처박힐 태세다. 부서진 온갖 살림살이와 나뭇더미, 자갈이 뒹구는 이곳은 여전히 폐허였다. ★관련기사 12면
북적이던 자원 봉사자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홀로 땅을 고르는 굴삭기가 애처로워 보인다. 최주길(崔珠吉·41)씨는 "수해 복구가 완료됐다고 떠드는 통에 모두 썰물처럼 떠나갔다"며 눈을 흘겼다.
■공동주택, 그들의 절실한 희망
'3명 사망, 104가구 중 64가구 침수·파손, 80㏊ 농지 유실….' 하지만 공식집계에 잡히지 않는 수재민들의 가슴앓이는 더 심각하다. 23개동 컨테이너 이재민촌의 남정네들은 오전부터 술판이다. "논도 다 쓸려갔는데 할 일이 있어야지…."
구호품으로 받은 옷가지며 식기들을 씻던 아낙들 사이에서 슬그머니 '공동주택' 이야기가 나온다. 박영자(朴榮子·49·여)씨가 "빌라든 아파트든 하나 곱게 지으면 오순도순 살 텐데"라고 하자 백규현(63) 할머니가 "돈은 있나. 다 빚내 짓는 거 아녀"라고 되받는다.
공동주택은 물에 떠내려 간 집을 다시 짓고 싶어도 제 땅이 아니어서 못 짓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11가구가 모여 '공동주택 추진협의회'를 만들었다. 시도 10가구 이상이 공동주택을 지으면 진입로, 상·하수도 건설 등을 지원키로 약속했다. 이번 수해에 끄떡없던 언덕배기 사과 밭으로 부지 선정도 대강 마무리했다.
■땅 매입에만 2억원, 엄두 못내
공동주택은 2,500평 부지에 빌라와 주택 등을 짓는 문화마을이다. 50∼60대인 수재민들의 노후를 대비한 '실버타운'이기도 하다.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해 민박도 치고 녹색 체험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수해로 유실된 마을 공공시설도 옮길 생각이다.
희망은 절실하지만 돈이 그 발목을 잡고 있다. 당장 땅 사는데 드는 비용만 2억원. 때문에 대다수 가구들이 좋은 취지를 알면서도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다.
최선덕(崔善悳·48) 이장은 "주민들이 더 자포자기하기 전에, 더 추워지기 전에 첫 삽을 떠야 할 텐데…"라고 안타까워 했다.
/강릉=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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