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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의혹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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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의혹 게임"

입력
2002.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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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진실게임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다. 그보다 의혹게임이라고 해야 옳다.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를 찾아보자는 뜻에서 동료들끼리 병풍(兵風)을 진실게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대북 비밀자금 의혹을 둘러싼 폭로와 공방을 보면 이 게임은 의혹경쟁이다. 이걸 게임이라고 하는 이유는 승부 계산이 너무 날카롭기 때문이다.현 정권 출범 이래 어느 게임이든 진실찾기를 내걸었지만 결정적으로 승부가 갈린 적은 없었다. "거짓말을 하려거든 큰 거짓말을 하라"는 말도 있지만 정치권 승부경쟁의 양상은 대부분이 '큰 거짓말' 경쟁과 다르지 않았다. 북한에 4억 달러를 비밀 송금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와 민주당은 "그런 엄청난 주장을 할 때는 스스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역공한다. 한나라당은 다시 "돈의 흐름을 알기 위해 계좌추적을 하면 진상은 당장 드러난다"고 맞선다. 대출과 인출과정이 이상하다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는 아직 본안의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들은 알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종국에 진실을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함께 안다. 더 능한 것은 어떤 의혹이 무슨 동기에 의해 제기되고 반격되며, 그 노림수와 서로간 손익이 어떠할 것이라는 추리와 분석이다. 정치현상을 읽어내는 안목이 전문가 수준으로 훈련돼 있는 한국인들이다. 그 뻔한 속내를 두고 정당과 언론들만이 서로 갈라져 정색을 하고 따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최고의 선거 전략가로 불리는 딕 모리스는 얼마 전 번역 출간된 '신 군주론'에서 "유권자들은 수십 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으면서 보다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게 됐으며, 정치를 보는 눈도 높아져 온갖 비방이 난무하는 정치판에 갈수록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또 "그럼에도 정치인들과 언론은 가장 저급하고, 비방과 왜곡이 판치는 당파싸움의 늪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표 계산이 전문인 일개 전략가의 촌평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한국 유권자들도 적지 않게 공감할 듯하다.

정치권으로부터 진실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럴 때 중요한 건 판단과 판정이다. 그래서 이 게임을 의혹게임이라고 부르게 된다. 굳이 말한다면 의혹게임의 승부처는 사람들이 느끼는 막연한 심증이다. 사람들은 어느 쪽의 설득능력과 설명노력이 나은가를 저울질하면서 싸움 당사자에게 요구한다. "내가 알게 해 보라."

정상회담을 놓고 북한과의 막후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를 따지는 이 무서운 싸움은 증거의 입증경쟁이 돼야 한다. 딱 떨어지는 진실은 보지 못한다 해도 누가 더 막연한 심증을 당겨 가는가는 입증의 설득력에 달려있다. 완승은 아니더라도 판정승이라도 거두려면 '막말'경쟁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의혹은 정부와 은행과 기업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에서 나왔다. 여기서 생긴 의혹을 부정하는 입증의 수단에는 정부 쪽과 그 주변이 더 접근해 있다는 게 일반의 상식이다. 거대한 폭로일지 그저 그런 주장에 불과한지를 결판내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개 그런 방법들은 작동되지 않았다. 의혹의 기록이나 하나 더 보태고 말 건지 이번에도 한번 볼 일이다.

조재용 정치부장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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