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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2.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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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이었습니다. 차를 몰아 강원 인제를 지나 한계리 삼거리에 닿았습니다. 왼쪽은 미시령과 진부령으로 가는 길, 오른쪽은 한계령을 넘는 길입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때는 바로 단풍철. 어느 쪽의 단풍이 더 좋을까. 왼쪽 길은 설악산의 북쪽 능선을, 오른쪽은 남쪽을 타고 오르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단풍의 색깔과 품위가 다릅니다.한계령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고개 입구에서부터 탄성이 터졌습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완전히 '피바다'였습니다. 희미한 붉은 색이 아니라 소름이 끼칠 정도의 선홍색이었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죠. 주위를 둘러보느라 차는 완전히 거북이였습니다. 그래도 뒤에서 보채는 운전자는 없었습니다. 단풍에 취해 넋을 놓기는 서로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었습니다. 물론 연도까지 기억할 정도의 아주 특별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신혼여행 중이었죠.

어쨌든 그 후 10년이 넘도록 단풍다운 단풍을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정말 볼품이 없었습니다. 물들기도 전에 말라 낙엽이 되기가 일쑤였고, 물이 들더라도 회색 잉크를 섞어 놓은 것처럼 선명하지 못했습니다.

단풍의 색깔은 날씨에 영향을 받습니다. 일교차가 크고 습기가 적어야 제 색깔을 냅니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날씨가 뒤죽박죽되어서인지 기상청은 물론 기상청보다 더 정확한 감(?)을 자랑하는 '산도사'들도 요즘은 단풍의 질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올해는 어떨가요. 지난해보다는 곱겠지만 예년수준을 웃돌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워낙 요동쳤던 올해의 날씨를 생각하면 감히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단풍은 분명 고와야 합니다. 모두가 하늘에 기도라도 드려야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전해드렸지만 대부분 단풍 명산을 끼고 있는 수해지역의 관광지 주민들은 울상입니다. 만약 단풍마저 시들하면 더욱 힘을 잃을 것입니다. 피가 흐를 정도로 붉디 붉은 단풍으로 온 산이 물들어야 합니다. 그 붉은 악마같은 기운 속에 사람들이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나그네는 큰 감동을, 실의에 빠진 사람들은 큰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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