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공단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고 있는 재중동포 오모(40) 씨는 최근 국민연금관리공단측으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1년 간 월급여의 4.5%를 한국 공단측에 꼬박꼬박 내야 하지만 이를 되돌려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 이었다.오씨는 "받지도 못할 돈을 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따졌지만 "기본 연수인 2년을 마치고 추가로 1년을 더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는 '당연가입자'로 분류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설명만 돌아왔다. 특히 같은 처지에 있는 파키스탄 노동자에게는 이런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것을 알고 더욱 화가 났다.
■대다수 외국인근로자 연금 떼여
외국인 노동자에게 국내 연금법을 그대로 적용, 돌려 받지도 못할 연금을 내도록 하는 부당한 규정의 폐해가 확산되면서 '연금 떼먹는 대한민국'이라는 오명을 낳고 있다.
95년 개정된 국민연금법은 '상호주의'에 따라 상대 국가가 자국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에게 자국 연금제도를 적용할 경우, 한국에서 일하는 상대국 노동자에게도 국내 법에 따라 연금을 납입토록 하고 있다. 이 규정으로 인해 국민연금공단에 월정액을 납입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1만3,900여명에 이르고, 최근 제3국 연수생이 대거 몰리면서 가입자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바로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말레이시아 등 12개 국가의 노동자 뿐이며 중국, 필리핀 등 82개국 노동자들은 월급의 4.5%를 꼬박꼬박 떼이지만 버린 돈으로 생각해야 할 실정이다. 12개 국가만 자국의 한국인 노동자에게 귀국시 연금납입금을 돌려주기 때문에 상호주의에 따라 국내 공단도 이들에게만 납입금을 반환해주고 있는 것이다.
■못 받는 납입금 100억원, 규정 바꿔야
연금납입금 반환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국가는 82개국. 노동자수로는 전체 연금가입 외국인의 95%로 1만 2,000명을 넘는다. 이들이 연간 한국 공단 측에 떼이는 금액은 100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각국과 사회보장협정을 체결해 서로 자국 노동자들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쉽지가 않아 일단 우리측이 손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제3세계 노동시장에 진출한 한국인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규정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빈곤한 호주머니'를 더 가볍게 하는 불공평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공단측은 10년 이상 납입금을 낼 경우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10년 이상 한국에 체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관계자는 "국내에서 일하는 제3세계 국가 노동자 수와 제3세계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수는 비교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며 "외국인 노동자를 허탈하게 만드는 규정을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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