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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어린이집 이야기꾼 할머니 이학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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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어린이집 이야기꾼 할머니 이학선씨

입력
2002.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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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선(80) 여사는 일제시대 서울 정신여고를 졸업하고 2종 교원시험에 합격, 황해도 신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3년여 동안 근무하다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로 평생을 보냈다. 때문에 '정년 이후'라는 글을 쓰는 것이 겸연쩍다고 했다. 하지만 나이 70을 넘기고도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을 잊지않는다는 것은 감동스럽다. 이 여사는 이루지 못했던 사회활동과 아동교육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5년전부터 공동육아운동단체의 어린이집 이야기꾼 할머니로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내가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자원봉사를 하는 과천의 튼튼 어린이집에는 일반 유치원에서 보기 힘든 꽤 커다란 채마밭이 있다. 이 채마밭엔 무 배추 딸기는 물론 밀과 보리 등 다양한 곡식과 채소류들이 자란다. 그래서일까.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젊은 부부들은 밀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해도 우리 아이들은 다 밀과 보리를 구별한다.

요즘 아이들은 파리만 봐도 기겁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깻잎에 붙어있는 벌레를 가리키며 "이건 무슨 벌레지?" 물으면 "무당벌레야"라며 냉큼 벌레를 집어올린다. 영어단어나 숫자를 기계적으로 배우는 또래아이들과 달리 자연을 벗삼아 마음껏 뛰놀며 쑥쑥 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산교육의 현장에 서 있다는 뿌듯함, 나도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하고있다는 보람에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을 느낀다.

나는 원래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채영신처럼 결혼을 하지않고 농촌운동가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않으면 정신대로 팔려가야하는 시대상황 때문에 22세에 결혼을 하면서 사회활동을 접었다. 당시만 해도 너무 어두운 세상이라 해방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국가공무원이었던 남편과의 사이에 1남 3녀를 낳아 키우는 동안 나는 가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일찍 접은 사회활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특히 1992년 남편이 암으로 먼저 가자 아쉬움은 더 커졌다. 그때부터 유기농업운동을 하는 일본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책을 번역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랬는데 그 책이 1995년 '함께 열어가는 공동체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공동체운동에 대한 관심은 젊은시절 농촌계몽운동가를 꿈꿨던 것과 무관치 않다.

책을 출간할 즈음, 미국서 공부한 아들이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열었다. 제도권 유치원의 주입식 교육과 권위적 문화를 비판하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래의 동료들과 함께 연남동에 '놀이와 나들이를 통한 자연친화적 교육'을 주장하는 공동육아방을 마련한 것이다. 어느날 이 공동육아방에 가본 나는 교사와 아이와 부모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 '이것이 교육이다' 싶었고 나는 그 날로 자원봉사자로 이야기 할머니를 자청했다.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책을 읽어주는 것 보다 훨씬 인상적이다. 내 나이 지금 80이지만 어린시절 교회 주일학교로 찾아온 소파 방정환 선생한테 들었던 이야기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몸집이 꽤 컸던 선생님이 풍부한 표정에 우스꽝스러운 손짓 발짓으로 옛날 이야기를 해줄 때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던지. 그래서 나도 아이들한테 옛날 이야기를 해줄 때는 일부러 목소리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극중 인물의 동작도 흉내내며 가능한한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 일종의 구술문학으로 우리 선조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주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나에겐 더 소중하다. 내가 언젠가 무슨 이야기를 해주다가 "옛날에 콩을 맷돌로 갈았거든"하자 한 녀석이 대뜸 "아냐, 믹서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옛날엔 맷돌이 믹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더니 아이들이 모두 흥미로워했다. 이런 것이 나에게는 우리의 생활문화를 알려주는 의미있는 일로 생각된다.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통해 먼 옛날부터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숨소리와 맥박, 기상을 이어받는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멋있게 늙을까'를 고민했다. 의료수준이 높아져서 100세까지도 산다는 세상, 인생의 마지막을 보람있게 매듭짓고 싶었다. 밤낮 아들 자랑, 며느리 자랑, 더 나아가 손주 자랑이나 하면서 살고싶진 않았다.

다행히 나는 아동교육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현재는 튼튼 어린이집과 역시 과천에 있는 열린 어린이집 두 곳에서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한다. 관절염 때문에 일년 열두달 병원신세를 지지않는 달이 없는 처지이기는 해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린이집 활동을 거른 적이 없다. 내가 가면 "이야기 할머니 왔다아∼"하며 쏟아져나와 뺨을 비벼대는 아이들이 있는 한 나의 어린이집 순례는 계속 될 것이다.

이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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