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증권 자동차 담당 최대식 애널리스트는 8월 현대·기아차의 실적과 투자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리포트를 냈다가 한동안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의 거센 항의공세에 곤욕을 치렀다. 현대자동차산업연구소 출신인 그에게 "알만한 분이 그럴 수 있느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온 것.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수부양을 위해 한시적으로 실시됐던 자동차 특소세 인하조치가 폐지되고, 환율이 불안해지면서 자동차업체 주가는 빠지기 시작했다. 시장은 결국 그의 손을 들어줬고 "냉철한 분석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는 투자자들의 격려성 전화와 이메일이 쏟아졌다.■현장 감각에 냉철한 분석까지
산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업계 출신 애널리스트들이 여의도 증권가에서 각광받고 있다. 새내기 직장인 시절 근무했던 '친정' 기업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 애널리스트들은 현장 감각에다 정곡을 찌르는 분석까지 곁들여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있다. 경기 흐름과 기업가치 분석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증시에서 산업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내놓는 업종 전망과 종목 분석은 그만큼 투자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반도체·철강 나쁘진 않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영업을 하다 1999년 8월 여의도에 들어온 우리증권 최석포 연구원은 기초에 가장 충실한 반도체 애널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반도체 품목별 월 수출액을 줄줄이 외우는 그에게 외국인 투자자들조차 반도체 경기 전망을 물어볼 정도다.
반도체 가격이 연일 연중 처저치를 갈아치우고 있지만 최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 업종은 이미 작년 말 바닥을 친 후 점진적인 회복세로 진입했으며 내년 1분기말∼2분기에는 본격적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해외 악재가 반도체 주가를 누르고 있다"며 "하지만 통신용 장비와 프로세스 반도체가 주력인 미국쪽과 메모리 분야가 주력인 국내는 시각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국내 반도체수출이 7·8월 5∼6%씩 증가한 점을 들어 내년초엔 희망을 이야기할 만하다는 시각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5년간 일하다 99년 LG투자증권 철강 담당 애널리스트로 옮긴 이은영 연구원은 '발로 뛰는 슈퍼 애널리스트'로 정평이 나있다. 일주일에 두 번 꼴로 기업탐방을 다니며 중소형 철강업체의 창고까지 뒤지는 열성파다. 이 연구원은 철강업종에 대해 "4분기는 좋다"며 "지금은 투자자들이 철강가격 상승 둔화 뉴스에 주식을 내다 팔고 있지만, 세계 철강업체들이 제품가격 인상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고 수출가격도 오르는 만큼 포스코 등의 실적은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동차·은행 글쎄요?
현대차에서 5년을 근무하다 2000년 증권맨으로 변신한 최대식 서울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업종이 3분기까지는 호조를 보이겠지만 소비심리 둔화로 4분기부터 내년 초까지는 시장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GM대우가 본격 영업을 시작하고 르노삼성차가 치고 올라와 현대-기아차를 위협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최연구원은 "다만 수출 증가가 내수 부진을 얼마나 보완해 주느냐에 달려있다"며 "현재의 현대차 주가는 충분히 가격 조정을 받아 대외변수를 감안해도 싸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종합기획실에 근무했던 백동호 현대증권 금융담당 연구원은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느냐'는 우려에 "신한지주에 대해 더 짜다"며 웃었다. 은행원 경력 덕분에 금융기관 내부 시스템을 잘 아는 만큼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강조. 그는 "카드 연체율 상승과 가계대출 증가에 따른 신용대란 우려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보기술(IT)업종 전망도 어둡다. KAIST출신으로 인텔리전트빌딩 시스템 구축 벤처기업에서 증권으로 옮긴 동양증권 이태진 연구원은 "코스닥 시스템통합(SI)업체와 인터넷 보안업종에는 여전히 버블(거품)이 많다"고 진단했다. 기업의 설비투자와 수요가 부진한데다 중소형업체 난립으로 수익성은 더 악화하고 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인 삼성SDI 해외 마케팅·영업에서 일하다 올 5월부터 교보증권에서 전자부품 업종을 담당하고 있는 민천홍 애널리스트는 "일부 평판 디스플레이와 휴대폰, DVR 부문을 제외하고 다른 전자부품은 2003년에도 나아질 것이 없다"고 말한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