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등이 마련해 상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유엔안보리의 이라크 무기사찰 결의안은 이라크가 7일 내에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시한을 정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모든 필요한 수단'을 사용할 것임을 명시한 매우 강경한 것으로 알려졌다.28일 미 언론들이 사전에 입수 보도한 결의안 초안에 따르면 이라크에 대해 핵 및 생화학 무기의 개발계획과 보유 현황 정보를 완전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대통령궁과 국방부, 모스크(사원)를 포함해 모든 시설에 대한 사찰단의 전면적이고 제한없는 접근을 못박았다. 이라크가 결의안 수용을 회답하는 데 7일 간의 시간을 주고, 응하면 통보 후 30일 내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미·영은 초안에 이라크가 두 시한 중 하나라도 어길 경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고 명시, 곧바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이라크의 반발
이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17일 유엔 무기사찰단의 무조건 복귀를 선언했던 이라크는 강하게 반발했다. 타하 야신 라마단 부통령은 "이라크를 해칠 목적을 가진 어떤 추가적인 과정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리크 아지스 부총리는 한술 더 떠 "미국의 공격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겪지 못한 대가를 치를 격렬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의 이 같은 거부가 그동안의 외교적 해결 자세의 포기일 수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궁 사찰이 관건
이라크가 발끈하는 명분은 1998년 유엔측이 이라크의 사찰거부에 따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결의 1154호에 있다. 이 결의안은 대통령궁 등 8곳만을 대상으로 해 사전에 사찰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의 결의에 따른 사찰은 수용하겠지만 유엔, 사실상 미국이 국가의 심장부를 샅샅이 들여다보는 것은 주권 침해에 해당하므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이라크의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70여 개의 대통령궁 중 일부 시설만 대상으로 할 경우 완벽한 사찰이 이뤄질 수 없으며, 이라크가 과거에도 핵의혹 시설을 대통령궁 시설이라며 접근을 거부한 전례를 들어 이라크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찰도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뉴욕 타임스는 한 유럽 외교관의 말을 인용, "이번 결의안은 전쟁 명분일 뿐"이라고 전했다.
▶불붙는 외교전
30일 결의안 상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미국은 일부 상임 이사국들의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외교적 총력을 쏟고 있다. 마크 그로스먼 국무부 차관은 27일 프랑스 방문에 이어 28일 러시아에서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과 회담했으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이라크도 미국의 공세에 맞서 한 때 적이었던 이란에 나지 사브리 외무장관을 보내 미국의 결의안에 대한 반대를 요청하는 등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英 수십만명 반전시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가 28일 수십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국 런던 시내에서 벌어졌다. '전쟁중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이라는 반전단체와 영국이슬람협회(MSB)가 주도한 이날 시위에는 일부 노동당 의원들과 유명 영화감독 켄 로치,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 등도 참가했다.
/런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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