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중 가장 풍성한 과일을 맛보는 때가 바로 이즈음입니다. 복숭아는 이제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포도, 사과, 배의 단내가 가득합니다. 또 과일의 범주에 넣기는 뭐 하지만 산에는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반질 반질 윤기나는 밤톨도 시장에 나왔습니다.과일도 따지고 보면 모두 식물의 열매입니다. 과수원에서 자라는 과일나무도 본래는 산에서 자라는 야생 식물 중에서 특별히 가능성 있는 종류를 골라 좀 더 달고 큰 열매를 맺도록 개량해가며 가까이 두고 키우는 것이지요. 산돌배는 크기가 배보다 작아도 향기만은 일품이고 시큼한 머루는 포도와, 달콤하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산과일 다래는 키위와 같은 집안 식구입니다.
자두나 앵두같은 보통 열매들은 주로 씨방이 자라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사과나 배는 씨방 둘레의 기관까지 함께 자란 것입니다.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먹는 부분은 꽃받침통이 부푼 것이고, 먹고 버리는 부분이 바로 씨방입니다.
식물들은 왜 이렇게 달고 맛있는 과일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씨앗을 통해 자신들의 종족을 보다 멀리, 보다 많이 퍼뜨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식물들은 달고 맛있는 과육을 사람 혹은 동물들에게 제공하고, 이들은 멀리 돌아다니며 씨앗을 뱉거나 배설물로 내보냅니다. 어떤 책에선 "사람들이 과일나무를 개량해가며 접붙이기 등 인공적으로 증식하는 것도 식물들의 전략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하더군요.
그런데 왜 밤나무의 열매인 밤송이는 가시가 가득할까요? 열매를 먹는 나무들은 색깔이 먹음직스럽고 맛도 달고 좋은 향까지 풍겨야 성공하는 것인데 밤은 유독 무서운 가시로 접근을 막고 있으니 큰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이 궁금증을 풀려면 먼저 열매와 씨앗을 구분해야 합니다. 새로운 식물로 자라는 것은 씨앗이며 열매는 씨앗을 포함하여 과육과 껍질을 가지고 있는 식물의 기관입니다. 사과나 배 한 개는 바로 열매이고 그 중에서 과육은 먹고 식물체가 될 씨앗은 버리게 되지요.
그런데 밤은 우리가 먹는 부분이 바로 씨앗입니다. 우리가 씨앗인 밤톨을 먹어버리면 새로운 나무로 자랄 수가 없는 만큼, 열매는 무서운 가시가 달린 껍질로 씨앗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 사는 방법도 제각각입니다.
그렇다면 도토리는? 이 이야기는 다음주로 미뤄야겠습니다. 산길에 구르는 도토리를 만나거든 잘 봐 놓으시길 바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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