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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하나 아시아도 하나/만경봉호 오늘새벽 입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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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하나 아시아도 하나/만경봉호 오늘새벽 입항

입력
2002.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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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만경봉-92호가 28일 응원단을 태우고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한다. 남북 대결시대의 북송선이 화해를 노래할 응원사절단을 싣고 사상 처음 부산에 들어오는 것이다.만경봉-92호는 27일 오후 북한 원산을 출발, 16시간의 항해 끝에 28일 새벽 5시께 부산외항에 도착한 뒤 검역을 거쳐 오전 8시께 다대포항에 접안한다. 선미에는 남북합의에 따라 인공기가 아닌 한반도기가 내걸린다. 응원단 276명과 기자단 13명, 승무원 68명 등 모두 357명이 타고 있다. 북측이 27일 판문점연락관접촉에서 응원단규모를 축소한다고 통보 당초 예상승선인원(430명)보다 73명이 줄었다. 이 배는 아시안게임동안 북한응원단의 숙소로 사용된다. 응원단은 취주악단 등 북한에서 선발된 미녀들로 구성돼 있으며 선수촌 등에서 공연도 가질 예정이다.

만경봉호는 195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니가타(新潟)항과 원산을 오가며 북한으로 이주하는 재일교포 등을 실어날랐다. 만경봉-92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92년 건조된 화물 여객선이다. 선두에 새겨진 만경봉-92호란 배 이름도 김 위원장의 친필 글씨라는 얘기가 있다. 현재 이 배는 한 달에 두세 차례 일본을 오가며 재일동포의 북한 방문선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원은 현대가 금강산 관광을 위해 운항중인 설봉호와 비슷하다. 총 9,339톤으로 길이 126m, 높이 20m, 폭은 21m다. 선내 구조는 갑판을 중심으로 4층씩 8층으로 돼 있고 식당 영화관 면세점 오락실 목욕탕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객실 수용능력은 약 200명, 화물적재량은 1,000톤 정도다.

북한은 우리측과의 협의과정에서 응원단의 선상생활에 필요한 생필품과 운항에 필요한 기름 등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응원단은 관광객이므로 공식지원은 있을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부산시가 남북화해 차원에서 적절한 대우를 해줄 것"이라고 답변했다. 북측은 입항 전날인 27일 부산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 휴대전화 4대와 남측 신문들을 배 안에 넣어달라고 미리 주문했다. 또 응원단의 이동에 필요한 버스 11대, 승용차 4대도 요청했다. 부산시는 응원단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응원단에 대한 점심은 물론 주식과 간식 등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응원단은 승하선 때마다 출입국절차를 밟아야 하며 한국인이 신고없이 만경봉호에 승선할 경우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는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간첩루트가 이젠 화합의 마당으로…

"포연속에 통일의 꽃을 피우는 기분입니다."

만경봉-92호를 맞는 다대포항 주민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간첩선 침투 루트가 민족화합의 마당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손님맞이를 하루 앞둔 27일 다대포항은 폭발물 탐지요원 등 경찰 800명이 철통경계를 펴는 등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나 선착장에 마련된 환영행사 단상 배경의 '용'과 '문살 무늬'가 북방과 남방의 화합을 의미하듯 주민들도 반세기 만에 찾아 오는 진객 맞이에 들뜬 듯 했다.

1·4후퇴 이후 부산에 정착했다는 강영찬(70)씨는 "북한응원단이 머무는 동안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잘 있다 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나타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산책 나온 신선민(5)양은 "내일은 일찍 일어나 북한 언니들 오는 것 보러 올래요"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1983년 12월 3일 밤 북한 특수요원을 태운 간첩선의 악몽을 목격했던 주민들은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횟집 주인 김형규(66)씨는 "훈련하는 줄 알고 구경하다 진짜 전투가 벌어져 불안에 떨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특별한 손님들이 온다니 기분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서일권(65)씨는 "북한응원단이 다대포항에 얽힌 사연이나 아는지 모르겠다"며 말을 흐렸다. 육군 53사단 다대소초장 안태양(24) 중위도 "스포츠와 인적교류는 반갑지만 해안경계에는 한 치의 빈틈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민 800여명의 환영속에 부산땅을 밟는 북한응원단은 입국심사를 마친 뒤 버스와 승용차 등에 나눠 타고 환영 오찬장인 해운대 그랜드호텔로 이동한다. 행사 관계자는 "자본주의 냄새를 풍기지 않도록 무난한 환영행사를 기획했다"고 귀띔했다. 부산시는 20대 미녀예술인 중심으로 구성된 북한응원단의 국내 공연 및 관광도 추진하고 있다.

/부산=김정호기자 azure@hk.co.kr

● 남북 공동응원史

북한의 참가에 따라 29일 개막되는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은 경기장마다 남북한 응원단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이 부산 하늘에 메아리 치게 됐다.

남북한 공동응원의 시초는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북 단일팀 구성에는 실패했지만 남북한이 서로를 응원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이때만해도 하얀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가 공식적으로 등장하기 전이어서 관중석에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섞였고 한반도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랑은 응원가처럼 불려졌다.

특히 9월23일 베이징 펑타이 스포츠센터에서는 처음으로 공동응원이 이뤄졌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남북선수 및 응원단은 겨레는 하나임을 새삼 확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한국의 사물놀이패와 북한의 풍물패의 신명 넘치는 가락도 분위기를 돋웠다.

베이징아시안게임 이후 남북한이 참가하는 국제대회에서는 공동응원이 자연스레 이뤄졌다. 91년 일본 지바(千葉)세계탁구선수권 여자단일팀 우승, 같은 해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단일팀 8강 진출의 현장에도 한반도기를 앞세운 공동응원이 펼쳐졌다.

/부산=여동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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