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굶어본 사람만이 밥맛을 안다."주일아, 설날에는 꼭 쌀밥 먹게 해줄게." 강원도 주문진에 살던 시절 그의 소원은 하얀 쌀밥에 간장 넣어 싹싹 비벼먹는 것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쌀 사먹을 돈이 없어 큰 솥단지에 국수 김치를 넣고 끓여 삼시 세끼를 팅팅 분 국수죽을 퍼먹고 자란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어렸기 때문에 어른들처럼 가난이란 것을 절절히이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국수를 무척 좋아하지만 우리 엄마는 국수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밥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이주일 선배가 아직은 우리 곁에 있어야 할 나이인데도 없는 이유가, 그가 너무나 오랜 세월 밥과 인연이 없었던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새삼 들어서이다. 밥이 뭐길래 밥 굶기를 밥 먹듯 했을까.
부실한 몸에 쓰디 쓴 술이랑 담배가 그의 친구이자 위로였을 것이다. 스타 대열에 들어서면서 그는 잘 먹고 싶었고 밥만큼은 아낌없이 베풀고 싶었을 것이다. 이주일 선배는 집을 찾은 손님에게 마당에 묻어둔 독에서 방금 꺼낸 시원한 김치, 밭에서 직접 기른 푸성귀, 노릇노릇하게 구운 생선 그리고 된장, 거기에 한 그릇 가득 담은 머슴밥을 들이대면서 우리 집에 와서는 누구든 밥 많이 먹고 배부르게 나가야 한다며 자꾸 권하셨다.
방송국에서 처음 그를 봤을 때, 나는 깔끔하고 세련된 그의 옷차림에 놀랐었다. 그 후 오랫동안 마주칠 때마다 그는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항상 단정한 양복차림에 깨끗이 빗어 넘긴 8대2 가르마, 양복 주머니에 꽂은 컬러풀한 손수건 한 장, 반짝거리는 구두, 주저앉은 코를 커버해주는 뿔테안경. 솔직히 나는 속으로 "야, 선배님이 돈을 많이 벌더니 역시 돈이 붙으면 사람이 달라보이는구나. 못생긴 얼굴이 멋있어 보이는걸"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자서전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를 읽고서야 왜 흐트러진 모습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는지를 알았다. "스타라는 사람은 흐트러진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서는 안된다."
하춘화씨 공연에서 사회를 볼 때 당시 인기인들은 무대 뒤 분장실에 팬들이 오기 2시간 전에 들어왔고 관객이 나가고 2시간 후에야 공연장을 빠져 나갔다.
무대 밖에서 만나는 스타는 이미 신비감이 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병석에 있으면서 환자복에 초췌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그는 그런 자신이 싫었을 것이다.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에서 병과 싸워 이기고 싶었던 절절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병실에 누워 낚시 생각을 많이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높은 파도를 헤치고 거대한 물고기와 싸우던 노인. 그는 결국 이겨냈다. 지금 나도 나 자신과 결투를 하고 있는 거라고,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그는 우리 곁에 책 한 권을 남겨두고 요단강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거대한 물고기를 꿈꾸며 빙긋이 웃고 있을 것이다.
/김미화·개그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