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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니에·부바 "뒷모습"/뒷모습은 거짓말할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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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니에·부바 "뒷모습"/뒷모습은 거짓말할줄 모른다

입력
2002.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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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이 수만 가지 얼굴 표정보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할 때가 있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78)와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1923∼1999)는 이렇게 속삭인다. 한 사람은 글을 통해, 한 사람은 사진을 통해. 투르니에의 짧은 글모음과 부바의 흑백 사진 53장이 담긴 책 '뒷모습'(현대문학 발행)에서다.

프랑스 파리의 패션쇼 무대 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델의 뒷모습, 바닷물에 발을 묻은 연인의 뒷모습, 어깨를 안고 나란히 걷는 연인을 바라보는 석고상의 뒷모습,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창턱에 앉아 장미나무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뒷모습. 뒤쪽이 진실이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투르니에는 이렇게 시작한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있는 한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그래서 투르니에는 뒤쪽의 진실을 찾는다.

채소밭을 걷는 정원사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다. 화려한 난간과 조각상과 꽃장식이 둘린 분수로 치장된 채소밭. 한때 아름다운 부인과 멋진 신사들이 거닐었을 화단에는 이제 양파와 배추와 감자가 촘촘히 심겨 있다. 그러니 사실 이 사진의 진정한 뒷모습은 "이제 채소밭으로 변해버린 지체 높으신 분의 정원"이라고 투르니에는 적는다. 작가의 글은 독자의 눈에 안경을 씌운다. 사람들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포르투갈 나자레 해변에서 배를 미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적은 '미는 것과 당기는 것'에 대한 단상은 이 작가의 통찰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섬뜩하게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이다. 미는 행위는 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제든 손 떼고 포기한 채 가버릴 수 있게 한다는 것(시지프스는 무슨 어리석은 고집으로 한사코 그의 바위 덩어리를 밀기만 하는지!). 반대로 앞에서 당기는 행위는 노예의 일이라는 것. 미는 행위에는 자기 앞으로 쫓아내고 자기 앞 저쪽으로 몰아내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 반면에 당기는 사람은 짐을 계속 자기 쪽으로 가져오고 있다는 것.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의 등을 찍었다. 구약의 신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신의 얼굴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엎드렸다. 신약의 예수는 사람의 얼굴을 입고 세상에 왔다. "예수는 인간을 일으켜 세우고 턱을 받쳐 땅으로 숙였던 얼굴을 들게 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두려움 대신 사랑의 종교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면 누구든 돌아서서 고개 숙인 한 사람의 뒷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그 뒷모습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르니에는 사진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사진작가들의 작품집에 독특한 시각의 글을 붙여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평론가 김화영 고려대 교수가 이 책을 파리의 중고서적상에서 찾아내 우리말로 옮겼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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