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02' 행사에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석학이 참석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장 보드리야르다. 보드리야르는 특히 우리의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중 한 명으로 이름나 있다.'토탈 스크린'은 그가 1987년부터 97년까지 11년간 쓴 41편의 글 모음이다. 이 기간동안 그가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온 가상 현실과 정보, 테크놀로지, TV, 정치문제, 파업, 폭력, 테러리즘, 에이즈, 인간복제 등 현대성의 다양한 특징들을 보는 그의 시각을 책 속에 녹여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사유와 세계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는 오늘날 도처에서 불확실성이 범람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 불확실성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바로 비디오 인터넷 멀티미디어 등을 통한 가상의 이미지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자신의 삶을 디지털방식의 결합처럼 구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의 구별은 사라지고 인간이 기계의 가상 현실 속에서 살게 돼 버렸다. 우리에게 말하는 것도 가상의 기계이고 우리를 생각하는 것도 가상의 기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상이 얼마만큼 세계를 변형시켰는지 모른다. 가상현실이 현실뿐 아니라 상상력마저도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는 기계의 가상 현실에 갇힌 인간이 됐기 때문에 가상의 폭력에 저항할 수도 없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정보의 출현과 동시에 역사의 전개가 끝났고 인공지능의 출현과 동시에 사유가 끝났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현대 철학서답게 내용이 다소 난해하지만 찬찬히 읽으면 가상현실에 갇힌 우리 사회의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