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은 서울 도성의 주산이다. 뒤로 산을 지고 앞으로 강에 면한 이른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수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의 모양새 만으로도 한 도읍지의 랜드 마크가 될 만하다. 높이는 해발 342m 밖에 안되지만, 피지않은 꽃봉오리 같은 바위 봉우리 때문에 백악(白岳) 또는 면악(面岳)이라고도 했다. 고려 숙종이 서울을 남경으로 정하고 이궁을 지으려고 윤관을 보내 명당을 찾으니, 삼각산 면악의 남쪽 땅, 곧 지금의 청와대 자리였다.■ 조선 조에 들어와서는 그 남쪽에 경복궁을 지은 뒤 궁궐 북쪽에 왕이 군대를 사열하는 시설을 만들어 경무대(景武臺)라 하였다.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밖,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왕궁과 도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이 터는 일제 강점기 중반인 1927년 조선총독이 관저를 지어 군림하기 시작하면서 대대로 권력자의 거처가 되었다. 광복 후 처음 정권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이 그 시설을 물려받아 입주한 뒤로는 신생 한국의 권력 1번지가 되었다.
■ 그 곳에 입주했던 사람들은 뒤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총독들도 그랬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더욱 그러했다. 풍수지리상으로는 명당일지 모르나 시정과 너무 떨어진 구중궁궐 같은 분위기 때문에 세상 일에 어두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본관과 비서실 거리가 너무 멀어 차를 타고 다닐 정도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도 처음 청와대 입주를 꺼렸으나 경호상의 문제와 대안부재로 뜻을 꺾었다. 국무회의를 정부 중앙청사에서 주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집권하면 청와대를 집무실로 쓰지 않겠다는 구상을 천명하고 있어 행정자치부가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안이 정부 중앙청사 옆에 새로 짓는 별관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는 것이라는 소식인데, 그 때문에 예정대로 청사 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종로 1번지에서 77번지로 옮겨 앉는 것은 청와대 이전의 의미가 없다. 경호 문제로 오히려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뿐이다. 옮기려면 정부 과천 청사 같은 곳으로 멀찌감치 옮겨가야 한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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