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 특사 파견 결정에 대해 국내 남북관계 및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26일 남북·북일 관계개선과 북한의 개혁개방 조치로 탄력을 받고 있는 한반도 정세가 급진전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특히 북한의 최근 파격적 행보를 고려할 때 북미 특사회담에서 핵·미사일 등 해묵은 안보현안의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윤영관(尹永寬) 서울대 교수
미국의 특사 파견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북미대화 촉구 등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조성된 대화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은 특히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2003년 이후 미사일 실험 유예를 약속한 점, 북한이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하는 등 대외개방 의지를 보인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듯하다. 그러나 특사파견이 곧 관계정상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대북 대화의지를 밝히면서도 의심을 갖고 북한을 상대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박건영(朴健榮) 가톨릭대 교수
미국의 특사파견은 현실주의적으로 보면 예상된 조치이다. 부시 대통령은 대북 강경 발언을 해왔지만 북한을 이라크처럼 무지막지하게 다룰 수 없고, 이는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전략적 가치면에서 석유와 석유수송로가 있는 이라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 행정부는 최근 남한과 일본이 북한문제에 대해 거의 독자노선을 걸을 움직임을 보이고, 유럽이 북한을 인정하자 뒤늦게 관계개선 방침을 정한 것이다. 향후 미국 국내정치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대화를 기조로 한 대북 정책은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이서항(李瑞恒)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미국은 북한의 변화와 함께 남북·북일 관계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특사 회담에서 핵사찰, 미사일, 재래식 무기 등등 핵심 문제에 관해 북한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탐색해 볼 것이다. 미국이 체제 및 인권문제 등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북한을 코너로 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도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지 않고서는 경제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협력하는 자세로 나올 것으로 본다
■백학순(白鶴淳)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특사회담의 의제는 미국이 안보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제기한 대량살상무기·미사일·재래식무기가 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생존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온 북한은 군사적 안보 현안은 포기하되, 체제 안보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협상에 응할 것이다.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할 때마다 반대 급부로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거나 포괄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일괄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핵 사찰을 수용하고,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MTCR) 가입에 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동만(徐東晩) 상지대 교수
최근 북한의 변화는 미국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미국은 이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대처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특히 일본이 경제적 동인 등으로 독자적으로 북한에 접근하자 상당히 당황했다. 북한은 대외관계 개선 조치의 마지막 지향점인 미국이 움직인 만큼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핵 문제에 유화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사로 거론되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면담에 응할 경우 6·15 남북 공동선언의 미이행 사항인 자신의 서울 답방에 대한 언질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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