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계열사를 통한 대북 비밀 지원 의혹이 일파만파의 파문을 낳으면서 이 같은 비밀작업을 누가 주도했는가로 의혹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한나라당은 이와 관련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했던 여권 실세와 현대 고위 관계자들이 주도적으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청와대가 나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산업은행 등에 지시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호성(嚴虎聲·한나라당) 의원은 26일 "2000년 4월10일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광부장관이 남북정상회담 준비차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현대 고위관계자들과 함께 북한의 송호경 아태위원장을 만나 이 같은 시나리오를 전달했다"며 "박 실장은 이를 청와대 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 등을 통해 산은과 관련 부처에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흔히 은행을 통한 자금지원 문제는 재경부나 금감위가 '조정'을 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 건은 두 기관 모두 전혀 간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관계자는 "당시 재경부와 금감위는 현대에 대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이 같은 용도의 자금지원 결정은 청와대가 주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며 "재경부 장관, 금감위원장, 경제수석, 산은 총재 등이 모이는 자리에서만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당시 실무진은 이를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현대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대신 산업은행을 통해 자금지원을 한 것도 북한에 대한 우회적인 자금지원을 위해서는 국책은행을 동원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판단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만일 북한과 이면 자금지원 합의를 했다면 국회동의를 받아야 하는 남북협력기금에서 집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판단, 현대에 대한 유동성 지원명목으로 편법지원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청와대에서 지시한 이상 경제부처 장관이라 해도 거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강력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청와대 외압설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현대상선의 대북지원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해명했다. 엄낙용(嚴洛鎔) 전 산은 총재가 현대상선 문제를 보고했다고 주장한 2000년 8월 경제장관간담회에 참석했던 인사들은 엄 전 총재의 보고를 들은 것은 시인했지만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모임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근영(李瑾榮) 금감위원장은 산은 총재 재직시절 한광옥(韓光玉)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현대 지원 압력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한 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도, 만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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