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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연해주의 한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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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연해주의 한국문화

입력
2002.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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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는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 버스가 많이 굴러다닌다. 그 버스들을 보면 반갑고도 어리둥절하다. '한샘유치원'버스와 '하단-구덕운동장'을 오가던 시내버스 등이 글씨도 안 고친 채 달리고 있다. 동쪽 블라디보스토크시의 경우 버스는 한국 버스가 많고, 승용차는 일제 중고차가 대부분이다. 우리 차는 운전대가 왼쪽에 있고, 일본 차는 오른쪽에 있다. 운전대가 왼편, 오른편에 각각 달린 차가 같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당연히 교통사고도 빈발한다. 경제성장을 향한 조급함과 혼란의 상징처럼 보인다.■ 러시아 집 창턱마다 화분이 아름답고, 식당이나 가게에도 꽃들이 탐스럽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시내에 이르는 도로변에도 군데군데 장미, 국화 등을 파는 여인이 있다. 그 모습은 우리 국도변에서 찐빵, 수박 파는 아낙을 연상시킨다. 한국 길가에는 그러나 꽃 파는 여인이 없고, 러시아 도로변에는 먹거리 파는 아낙이 없다. 문화가 다른 궤도를 그리며 발전해 온 탓이다. 생필품 부족의 어려움과 조급함 속에도, 꽃 문화를 지켜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 추석 전날인 20일, 블라디보스토크시 아르세니예프 연해주립 박물관에 한국민족문화실이 개관했다. 러시아 박물관에서의 상설 한국실이 문을 열기는 처음이다. 30평 정도의 한국실은 우리 국립민속박물관의 도움으로 꾸며졌다. 한국학을 전공하는 러시아 대학생들은 박물관 입구부터 사물놀이 공연으로 기세를 올렸다. 양국의 박물관 관계자와 공직자들, 언론, '고향의 봄'과 '아리랑'을 연주한 공연팀, 시민 등 400여명이 개관을 축하했다. 정중하면서도 흥겨운 개관식이었다. 전시품은 도자기와 금속인쇄기술, 한글발명 등 우수한 전통문화와 의식주생활을 소개하는 120여점이다.

■ 연해주는 고구려·발해의 오래 된 자취가 남아 있고, 근대사에서 망국의 한을 품고 떠돈 재 러시아 15만 동포 중 현재 8만여명의 고난과 영광이 숨쉬는 땅이다. 박물관 직원 6명은 한국 손님들을 위해 개관식과는 별도로 전통음악과 민속춤을 공연해 보여주었다. 아마추어지만 그들의 공연은 프로 못지않았다. 러시아의 문화적 저력은 장강처럼 흐르고 있다. 그 흐름 위에서 한국문화 유산이 또 하나의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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