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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집권한 슈뢰더는

입력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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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당이 한때 야당과 9% 차까지 벌어졌던 지지율 열세를 극복하고 극적인 재집권에 성공한 데는 게르하르트 슈뢰더(58) 총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본능적인 정치 감각과 승부사 기질이 강한 슈뢰더가 현직 총리의 장점을 살려 선거쟁점을 경제문제에서 홍수 지원책과 이라크 정책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수세에 몰려있던 슈뢰더가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 것은 100여 년 만의 대홍수가 유럽을 휩쓴 8월초. 휴가지에서 한가롭게 홍수 소식을 맞이한 맞수 에드문트 슈토이버 후보와 달리 그는 선거 유세 일정마저 취소한 채 시름에 잠긴 국민들에게 '함께 아파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지율이 서서히 상승세로 돌아서자 그는 70∼80%에 이르는 국내 반전 여론을 감안, 대이라크전 반대 입장을 국내외에 선언하면서 인기 회복에 가속도를 붙였다.

슈뢰더의 작전은 정확하게 들어맞았고 슈토이버는 강경 우파 이미지 불식을 위해 거론을 꺼려오던 이민자 정책까지 막판에 들고 나왔으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 후였다.

슈뢰더는 1998년 총선에서 16년 간이나 총리를 지낸 거목 헬무트 콜을 물리치면서 유럽의 신세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당시 슈뢰더 총리가 오스카 라퐁텐 당수를 제치고 사민당 총리 후보가 된 것은 선거 승리를 위해 대중적 이미지가 좋은 그를 당의 '이미지 상품'으로 내세우는 편이 유리하다는 당내 여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집권 후 정통 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탈피해 친기업적 색채가 강한 정책을 폈다.

1944년 태어난 해에 아버지가 전사해 편모슬하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슈뢰더는 17세부터 도매상점 점원 등 막일을 전전하며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빌리 브란트만큼 카리스마적이면서 헬무트 슈미트 같은 경제통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기를 위해 쉽게 변신해 신념이 없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네 번의 결혼 경력을 갖고 있다. 준수한 외모, 뛰어난 화술과 정확한 발음은 그의 또다른 정치적 자산으로 꼽힌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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