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구하기 엄청 힘들었슈!"1999년 겨울 중국 상하이. '아나키스트'의 촬영장에서 돌아와 피곤한 하루를 정리하고 있는데 어렵게 구했다며 딸기가 든 비닐봉투를 들고 이범수가 방문했다. 그날 밤 딸기를 먹으며 새벽 3시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그의 능청스러운 농담에 바닥을 굴러가며 배를 잡고 웃기도 했고, 연기에 대한 진지한 자세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기도 했다.
'아나키스트' 이후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가 영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물론 훗날 TV의 여러 오락프로그램에서 내로라는 개그맨들을 뺨치며 방송을 휘어잡을 정도의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확인했다. '태양은 없다'에서 아줌마 단발로 그 잘생긴 정우성 이정재의 인기를 추월하며 눈에 띄기 시작했던 그는 성실하고 노력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있다.
굳이 오디션을 받겠다고 '아나키스트'의 돌석 역에 열정을 보이던 배우로서의 욕심, 주어지는 역할에 기대의 200%를 달성하고야 마는 집요함은 그의 무기다. 중국에서 딸기를 먹으며 나누던 대화 중 "배우를 하루이틀 할 것도 아닌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침착하게 돌진하겠다"던 그의 연기관이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인터뷰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부딪혀보면 성급함으로 일을 그르치는 배우가 어디 한 둘이던가.
이범수의 출연작 중 '하면 된다'의 어눌한 연기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원초적인 장발족 대학생 연기는 그의 인기에 박차를 가하게 했으며, '정글쥬스'의 양아치 캐릭터는 장혁과 함께 CF에까지 이어지는 인기로 연결됐다.
그는 올해 초 '일단 뛰어'에서 성질 급한 형사로 꽃미남 3명과 팽팽하게 맞붙으며 일단은 조심스럽게 주연급으로 부상했다. 그리고는 최근 '몽정기'에서 김선아와 더불어 멜로 향기까지 풍기며, 남자주인공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몽정기' 현장에서는 그가 적역을 만나 또 한번 관객들에게 파워연기를 보여줄 것이란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연히 시작했던 방송에서 높은 시청률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걸 보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인가?"하는 걱정을 잠깐 했었다. 그러나 "더 오래 하면 영화하기 힘들 것 같아서 안되겠다"며 그는 자의로 방송을 중단했다. 시트콤과 토크쇼 등 눈에 보이는 인기를 거절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돌아온 그에게 반가움의 박수를 보냈다.
영화현장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안정이 된다는 그는 '천상 배우'다. 이 가을, 충청도 사투리를 약간 섞어 끊임없이 늘어놓는 입담과 유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이범수와 수다를 떨고 싶다.
정혜승/영화 컬럼니스트·amsaj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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