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사람들은 폭탄 파편을 모아 고철로 팔기도 하고 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쓰고 있었다. 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역기를 만들어 운동도 하는 것이었다. 살생의 임무로 한 생을 살았던 폭탄을 녹여 새 임무를 주자, 군함을 녹여 보습을 만들 듯 폭탄 파편을 모아 녹여서 삽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임옥상(52)씨가 25일부터 10월 7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열세번째 개인전 '철기시대 이후를 생각한다'를 연다. 경기 화성의 미 공군 사격장 매향리에서 나온 폭탄으로 식탁과 의자, 조명기구 등 생활집기를 만들었다. 매향리에 가장 많이 투하되는 210㎝짜리 연습탄은 그의 작품에서 문명을 능욕하는 거대한 음경(陰莖)으로 변했다.
임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폭탄 파편과 고철의 녹을 벗겨 평화와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 '악의 축'을 응징한다는 이름으로 USA 마크를 달고 평화를 찢고 매향리 갯벌에 쑤셔박혀 짠물에 녹이 슬어가는 폭탄, 철의 일생은 비틀거리는 세계사·문명사의 응축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The Great America Phallus' 연작은 이를 직접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2m가 넘는 폭탄에 눌려 드러누워 있거나, 등에 그것을 얹고 기어가고 있거나 혹은 그것을 음경처럼 달고 서 있는 고철 덩어리 인간의 모습은 폭탄으로 상징되는 증오에 가위눌린 인간문명의 모습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철기시대의 꿈을 꾼다. 실제 스푼과 포크 나이프 등 식기를 이용해 만든 거대한 '큰 스푼', 스테인레스 스푼과 매향리의 고철 잔해물로 함께 만든 '철의 꿈' 등 작품은 폭탄으로 상징되는 파괴의 동력을 희망과 전망의 그것으로 바꾸어나가려는 미학을 보여준다.
항상 온 몸으로 작업하는 그의 에너지는 이번 전시에서도 느껴진다. 매끈해 보이기만 하는 폭탄으로 만든 식탁이나 찻상은 사실 중노동을 요하는 작업이다. 270㎏ 무게의 폭탄은 외피 1㎝ 정도만 철이고 내부는 시멘트로 꽉 차 있다. 임씨는 이것을 가로, 세로로 잘라서 식탁 받침대로 변신시키고, 고철 덩어리를 모아붙여 의자를 만들었다.
작가는 "매향리에서만 하루 300∼400개의 폭탄 잔해가 나온다. 2000년 6월부터 그것들을 캐왔다"며 "예술은 시대와 작가가 만나는 방식에 따라 꽃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공공미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6시 관객들에게 작품 설명회를 여는 한편, 26일과 10월 3일 오후7시에는 미술사학자 유홍준, 화가 한젬마, 시인 김정환씨 등 지인들을 초청해 함께 대화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임씨는 10월 1일부터 한국일보에 연재되는 황석영씨의 소설 '심청, 연꽃의 길' 삽화도 맡았다. 언제나 시대와 함께 호흡해온 그의 필치가 기대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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