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올림픽 후 개헌'을 이끌어 낸 1986년 2월24일의 청와대 회담에 대해 나는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정권이 개헌 불가라는 완강한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섰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정도로는 국민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대다수의 국민은 다음 대통령을 직접 뽑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망은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니 신민당으로서는 개헌 서명 운동을 중단할 까닭이 없었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여전히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4월5일부터 영국 서독 등 유럽 4개국을 돌고 왔다. 그리고는 순방 보고를 겸해 4월30일 3당 대표를 다시 청와대로 불렀다.
전 대통령은 먼저 개헌 서명 운동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신민당은 국민에게 불안을 주는 서명 운동을 중단하고 국회로 돌아 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정부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개헌 논의는 막지 않겠습니다."
신민당 이민우(李敏雨) 총재가 말을 받았다. "서명은 내가 제일 먼저 했으며, 당의 행사입니다. 개헌 문제는 그 시기가 현재의 시국을 푸는 관건입니다. 화합 분위기에서 통치자가 결정돼 평화적 정권 교체를 한다면 올림픽도 화합 속에서 치를 수 있고 안보에도 도움이 됩니다. 대통령께서 개헌 시기에 결단을 내려 새로운 헌법으로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고 물러나게 되면 역사가 높이 평가할 것입니다." 결국 개헌 시기를 앞당기자는 말이었다.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지금은 건국 이래 가장 중요한 고비입니다. 여야의 모든 지도자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든지, 정권을 꼭 지키겠다든지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야당은 86년 개헌, 정부 여당은 89년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데 어떻게든 임기 내에 반드시 개헌을 해야 합니다."
나는 공식적으로 '임기 내 개헌'이란 말을 썼다. 그런데 내 말을 받는 전 대통령의 말이 좀 이상했다. "어떤 헌법이 바람직한지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직선제만이 민주적이고, 간선제는 비민주적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 역사상 여섯 번이나 직선제를 했지만 집권자가 평화적으로 정권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까?"
난 언뜻 전 대통령이 내각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 대통령은 자신이 돌아 본 유럽의 내각제 실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어 그의 입에서 깜짝 놀랄 만한 말이 튀어 나왔다. "재임 중에 개헌을 하라고 하는데,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건의하면 재임 기간 중에라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국민과 야당이 그토록 바라던 임기 내 개헌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이민우 총재는 귀가 의심스럽다는 듯 전 대통령의 말을 재차 확인했다. "그렇다면 후임 대통령은 새 헌법에 의해 선거하게 되는 겁니까?" 그러자 전 대통령은 다소 물러서는 듯한 발언으로 확답을 피했다. "국회에서 합의한다면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88년까지는 현행 헌법을 지켜 평화적 정권 이양과 올림픽 등 대사를 치른 후 국민 뜻에 따라 개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확인에 나섰다. "국회 헌법특위에서 각 당이 안을 내 놓고 정치 일정까지도 합의한다면 거기에 따르겠다는 말씀이군요." 전 대통령은 여전히 못을 박는 답변을 꺼렸다. "그렇게까지 양보했는데 신민당이 길거리에서 개헌 서명을 하시겠습니까. 서로가 믿어 주어야지요."
그 날 회담은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여야 합의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지만 어쨌든 올림픽 이후 개헌에서 임기 내 개헌 가능성으로 바뀌었으니 주목할 만한 진전이었다. 그만큼 당시 여당은 국민의 열화와 같은 개헌 요구에 밀리고 있었다.
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날 무렵 노태우(盧泰愚) 대표에게 의미 심장한 말을 건넸다. "노 대표께서 김영삼(金泳三)씨를 한번 만나 보시지요." 이는 김영삼씨를 실세로 인정하겠다는 얘기와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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