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고향길은 잘 다녀오셨나요? 서울 토박이인 저는 매년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 떠나는 그 긴긴 행렬, 그 끝에 기다리고 있을 따뜻한 고향집 뜰, 그 공간에서 오고갈 수많은 이야기와 정들이 몹시 부러워지곤 합니다. 그 길에서 지천으로 만나셨을 코스모스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코스모스의 고향은 정확히 말하면 멕시코이고 스페인의 한 신부에 의해 유럽에 알려져 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식물입니다. 워낙 강인한 생명력 덕택에 이젠 우리 땅에서 누가 심지 않아도 저절로 씨앗이 떨어져 싹을 틔우는 귀화식물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식물집안에 새 식구가 된 셈이지요.
무더운 여름이 가고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하늘하늘 살랑거리며 피어나는 분홍, 자주, 흰색의 코스모스 무리들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 코스모스란 식물을 정확히 가을꽃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여름부터 꽃이 피기 때문이지요.
꽃들은 어떻게 자신이 꽃을 피워야 할 때임을 알까요? 식물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온도보다는 햇볕의 길이에 따라 반응하는 식물이 많습니다. 코스모스는 하지(夏至)가 지나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그 때를 아는 식물로 이를 단일식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를 지나 가을이라고 친다면 가을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코스모스는 국화과 식물입니다. 국화과를 흔히 아주 진화된 식물의 집안이라고 말합니다. 이유가 있지요. 우리가 흔히 한 송이 국화꽃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수십 송이의 꽃들이 모여 있는 꽃차례입니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백일홍, 구절초, 산국과 같은 국화과 식물들의 경우 꽃들이 모여 분업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꽃잎이라고 부르는, 가장자리에 달린 꽃들은 혀와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혀꽃 또는 설상화(舌狀花)라고 부르며 화려한 색깔로 곤충들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지요.
물론 수술과 암술은 퇴화되어 흔적만 있습니다. 실제로 중요한 꽃가루받이를 하는 꽃들은 그 안쪽에 있는 꽃들입니다. 불필요한 꽃잎이나 꽃받침은 모두 퇴화하고 암술머리, 씨방, 꽃밥들이 잘 배치되어 딴 생각 않고 혀꽃을 보고 찾아온 곤충들의 도움으로 튼튼한 종자를 만드는 일에 열중합니다. 통모양으로 길쭉하다고 하여 통상화(筒狀花)라고 합니다.
코스모스는 이런 기능적인 역할을 달리하는, 하나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그들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꽃차례를 만드는 꽃입니다. 코스모스라는 말이 '질서'와 조화, 나아가 완전한 질서체계를 가진 '우주'를 의미하며, 한편으로 조화를 이룬 것은 아름다는 뜻으로 '아름답다'는 어원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코스모스 한 송이를 작은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지나친 비유가 아닙니다.
혹시,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수십 송이의 장미를 선사할 만큼 주머니가 넉넉지 않다면 코스모스나 구절초 같은 국화과 꽃 한 송이를 건네십시오.
이는 실제로 수십 송이의 꽃들이며, 화려한 겉멋에 치우친 꽃들보다 작은 꽃들이 모여 조화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처럼 서로 나누고 합하며 살아가자는 마음도 함께 선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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