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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앞과 뒤/한나라·민주 정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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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앞과 뒤/한나라·민주 정보전쟁

입력
2002.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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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의 한 고위 당직자실. 비공개 휴대폰(3개 소지)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1분도 안돼 통화를 끝낸 이 당직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몽준(鄭夢準) 얘긴데…다 아는 얘기를 정보라고 얘기하네. 싱거운 친구." 누구냐고 물은데 대해 그는 "모 기관 직원"이라고 했다. 그가 독자 인맥을 관리하며 수시로 보고를 받는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당간 정보전이 뜨겁다. 날로 거칠어 지고 있는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는 정보수집과 가공, 홍보가 필수 과정이다. 양측은 상대에 흠집을 내기 위한 정보와 상대의 공격을 막을 정보 수집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정보 수집은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 특보단과 정형근(鄭亨根) 의원, 유승민(劉承旼) 여의도 연구소장 등이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김대업(金大業)씨의 병풍 폭로에는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 홍준표(洪俊杓) 의원 등도 독자 정보망을 가동해 대응해 왔다. 검사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의 정보망도 한 몫을 한다. 지난달 김성재(金聖在) 문화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인 2000년 초 국방부의 병역비리 내사 자료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폭로, 한차례 공방을 불렀던 것도 김 총장이 직접 정부 관계자의 제보를 받은 결과였다.

특보단과 정 의원은 상당한 정보력을 갖춘 것으로 얘기되지만 고급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는 게 본인들의 설명이다. "문민정부 시절만 해도 청와대 보고서까지 안기부에서 돌아 다녀 심심찮게 야당에 유출됐다.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의 활약이 그래서 가능했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 좀체 문서를 만들지 않는다. 담당자만 알고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국정원장 등 핵심에게만 보고한다. 더러 들어 오는 첩보는 하나같이 구전 정보여서 문건을 증거로 제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

외부 제보 의존도가 큰 것은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19일 민주당 여의도 당사 2층 대변인실.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이 50대 초반의 신사와 20여분간 밀담을 나누었다. 밀담이 끝난 뒤 장 부대변인은 메모 쪽지를 와이셔츠 주머니에 넣으며 미소를 지었다. "공적자금 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제보가 들어 와 확인할 예정이다. 책상 서랍에 9통의 제보 편지가 있고 매일 여러 차례 제보 전화가 걸려 온다. 믿을 만하다 싶으면 곧바로 확인에 들어 간다."

설훈(薛勳) 의원이 폭로해 한나라당 이 후보에 큰 부담을 안겼던 빌라 문제도 관련자 제보가 출발점이었다. 설 의원 본인은 밝히지 않았지만 당 주변에서는 부동산업자를 지목하고 있다. 이 후보 딸 부부가 문제의 빌라 4층에 산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한 한 당직자는 "빌라 인근의 부동산업자가 전화로 알려 와 슬쩍 떠 봤더니 한나라당이 의외로 쉽게 인정했다"고 말했다.

확인 과정을 거친다고는 하지만 제보에 기초한 폭로전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시간에 쫓겨 증거나 증인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이 후보측에 최규선(崔圭善)씨 자금 2만달러가 흘러 들어 갔다'는 설 의원의 폭로가 한 예이다.

최근 크게 늘어 나고 있는 인터넷 제보는 양날의 칼이다. 제보자의 심리적 부담이 적어 풍부한 제보가 가능하지만 신원 확인이 어렵다. 인터넷 자체가 정보원이 되기도 한다. 김대업(金大業)씨가 수감 중에도 한 방송사의 부부 골프 동호회 게시판에 수시로 글을 올렸다는 지난달 한나라당의 폭로는 동호회 회원이 게시판을 검색해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에게 제보한 데서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조악한 제보나 첩보를 발로 뛰어 확인하는 작업이 여전히 중요하다. 한나라당은 최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장수샘물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한 관계자는 "명색이 변호사인데 재산등록 액수가 너무 적어 의문이 생겨 재산 내역과 기업 관련 경력을 하나하나 뒤진 결과 의혹을 발굴했다"며 "이런 작업을 거쳐 다른 분야의 의혹도 의혹도 상당 부분 확인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조사단이 현지 주민이나 주변 인물과의 접촉을 통해 김대업씨의 과거 행적을 파헤쳐 폭로한 것은 김씨의 신뢰성에 적지 않은 흠집을 남겼다.

물론 발로 뛰기에는 과거 경력에서 만들어진 인맥이 중요하다. 이미 공지의 사실이 된 민주당과 김대업씨의 접촉은 국방부의 병역비리 수사 당시 장관을 지낸 천용택(千容宅) 의원이 중심으로 거론된다. 천 의원 본인은 부인하고 있으나 민주당 안팎에서는 "천 의원이 국방장관, 국정원장 시절 직간접으로 병풍 관련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최근 퇴직한 구 현대그룹 임원, 삼성 등 경쟁사 관계자, 축구협회 및 월드컵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에 대한 '올코트 프레싱'을 통해 정몽준 의원을 겨냥한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 이규택(李揆澤) 총무는 정 의원이 17세 때 생모를 처음 만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체계적인 정보 수집, 관리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 방어를 위한 정보, 정 의원 관련 정보, 노 후보 관련 정보, 청와대 동향과 남북 관계 등 정권 정보 등으로 부문을 나누어 정보 관리를 체계화할 계획이나 크게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다. 민주당도 이 후보 공격을 위한 '7대 의혹 조사위' 등을 두고 있으나 아직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 프리미엄이 사라졌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집권 초기에는 제법 있었지만 요즘은 섭섭할 정도로 정부쪽 정보가 없다. 정부쪽에 많은 자료가 있을 텐데도 내놓지를 않는다. 확인 과정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은 한나라당도 가능하다."

정보 제공을 미끼로 한나라당에 줄을 대려는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앞으로 대선 판세에 따라 정보력도 요동을 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의 의혹 공방전에서 언론 보도가 여전히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보전의 실체와 한계가 의문시되기도 한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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