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한마디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지배하겠다는 '부시 안보 독트린'의 결정판이다.부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군사·안보·외교전략을 포괄적으로 집약한 이 보고서에서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위협에 대해 선제 공격과 단독 행동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림으로써 향후 미국 안보전략의 중심이 위협세력에 대한 일방적인 무력행사로 옮겨갈 것임을 선언했다.
보고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과 군사적 행동의 제한적 사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자위권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는 발언은 미국이 적성국과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상시(常時) 선전포고 태세에 돌입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곧 1940년대부터 미국 대외·군사정책의 기조를 이뤄온 억제와 봉쇄 정책이 용도폐기됐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21일 "이 보고서는 세상을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있어 미국에 대해 거의 메시아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시 독트린은 현존하는 안보 위협에 대한 무차별 응징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래의 잠재적 군사 도전에 대해서도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의 군사력은 잠재적 적국들이 미국의 힘에 필적하거나 이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군사적 팽창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토록 할 만큼 강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탈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만한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부시가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라크, 북한, 이란 가운데 이란이 새 안보전략보고서에서는 '불량국가'로 지목되지 않은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최근 이란과 미국의 활발한 관계개선 움직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특히 테러리스트와 불량국가의 목표를 감안할 때 미국은 과거와 같은 사후대응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밝혀 북한에 대한 핵사찰 요구의 강도도 더욱 높일 것임을 시사했다.
협력보다는 일방적 행동을 앞세우는 부시 독트린은 국제관계를 더욱 긴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전문가들은 부시 독트린이 체첸 반군에 대한 러시아의 선제공격, 신장(新疆)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무력 사용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美 국가안보전략" 요지
백악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7일 서명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인터넷 홈페이지(www.whitehouse.gov)를 통해 공개했다. 다음은 국가안보전략 요지.
▶미국의 국제전략 개관
미국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침해에 맞서 미국의 목소리와 국제기구에서의 표결권을 이용해 솔직히 말할 것이다. 미국의 대외원조는 자유를 증진하고 비폭력적 방법으로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국가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미국은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증진하고 억압적 정권의 침해로부터 보호하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국제 테러리즘 척결
미국은 국제적 조직망을 갖추고 대량살상무기를 획득하려는 테러리스트나 테러 옹호 국가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춰 이들이 미국의 국경에 닿기 전에 위협을 식별, 파괴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을 지킬 것이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지만 필요한 경우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선제 행동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테러를 옹호·지원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국가로서의 의무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거나 강제함으로써 더 이상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적국의 대량살상무기 위협 예방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은 현실화하기 전에 억제·방어해야 한다. 불량국가들과 테러리스트들의 목표를 감안할 때 미국은 과거와 같은 사후 대응 태세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억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임박한 위험, 적국의 무기사용에 의해 초래될 수 있는 잠재적 피해의 규모는 이 같은 사후 대응적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유시장·무역을 통한 국제경제 성장
외국과의 경제 활동을 통해 생산성 향상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정책의 장점을 강조한다. 이같은 정책에는 기업투자와 혁신 기업가적 활동을 촉진할 성장지향의 법제와 규제정책, 세제 근로의욕과 투자의욕을 고취하는 감세정책 법치주의와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정책 등이 포함된다.
▶개발 혜택 확대
여전히 세계 인구 절반 가까이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상황에서 세계는 공정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세계의 모든 빈민들에게 발전과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긴박한 도덕적 과제이며 미국 국제정책의 최우선 과제이다. 미국 정부는 이 같은 개혁 과제를 충족시킨 국가들을 돕기 위해 자원을 제공할 것이다. 미국의 핵심적인 대외원조 지원액을 50% 증액할 것을 제안한다.
▶국가안보기관 강화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려 드는 적이 있다면 국가든 국가가 아닌 존재든 격퇴시킬 능력을 우리는 유지해야 한다. 미국의 군사력은 잠재적 적국이 미국의 힘을 능가하거나 이와 대등해지기 위해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정리=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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