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처럼 이념의 벽이 쉽게 무너지는 분야도 드물다. 특히 국제대회에서 조우하는 남북 선수들은 처음에는 어색해 하다가도 이내 가까워진다.독일의 통일 과정은 스포츠의 그러한 순기능을 잘 입증해준다. 동서독은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일찌감치 단일팀을 구성해 동시입장, 통일의 디딤돌을 놓았다. 동독은 51년 로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단일팀 승인을 요청했고 진통 끝에 IOC의 중재로 55년 6월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동서독은 이에 따라 이듬해 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멜버른올림픽, 로마올림픽, 도쿄올림픽에 이르기까지 4차례에 걸쳐 단일팀으로 참가했다.
56년 당시 구호는 독일, 단기는 흑·적·황 3색의 독일기에 오륜마크를 달았으며 국가는 베토벤의 제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였다. 선수선발은 동서독 구분 없이 우수선수를 뽑았고 단장은 다수 선수를 파견하는 쪽에서 선임됐다. 선수단규모는 서독 138명, 동독 37명이었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IOC가 내놓았다. 당시 애버리 브런디지 IOC위원장은 정치가들이 하지 못한 일을 스포츠인들이 해냈다고 평가했다. 72년 미국과 중국에 가로 놓인 이념의 벽을 허문 것도 4g 안팎에 지나지 않은 탁구공이었다. 일명 핑퐁외교였다.
물론 스포츠가 남북화해에 기여한 것만도 아니었다. 예외적으로 남북대결의 첨병 역할을 하기도 했다. 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남북축구가 공동우승을 차지했지만 남북은 시상대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가 어느 분야보다 먼저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이번 부산아시안게임은 남북이 손을 맞잡고 한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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