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납치돼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일본인 8명의 사인과 북한에서의 활동 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증폭되고 있다. 앞으로 수교 협상에서 북한측이 일본 정부에게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고 증거를 제시해 줄 것인지 여부가 북일 수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북한은 '8명 사망, 5명 생존, 1명 미확인'의 리스트와는 별도로 비공식적으로 사망자들의 사망일시를 일본측에 전달했다. 일본 외무성은 19일 이를 유족들에게 통보했다.
특히 8명 중 1983년과 1980년 각각 유럽에서 납치된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당시 23세)와 이시오카 토오루(石岡享·당시22세)는 1988년 11월 4일 같은 날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시오카는 88년 9월에 가족에게 보낸 비밀편지를 통해 평양에서 아리모토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알린 적이 있어 불과 두 달 후에 같은 날 숨졌다는 데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77년 납치될 때 여중생으로 납치 피해자의 상징적 존재인 요코다(橫田) 메구미(당시 13세)의 경우는 93년 3월 13일 29세에 숨진 것으로 통보됐다. 또 북한에서 '류명숙'이란 이름으로 '김철주'란 북한 남자와 결혼해 김혜경(15)이란 이름의 딸을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이 평양에서 면담한 딸은 "유치원 다닐 때 엄마가 죽었고 아빠는 재혼했다"면서 "엄마가 일본 사람인 줄 몰랐고 사인이나 무덤이 어딘지도 모른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金賢姬)의 일본어 교사 '이은혜'로 추정되는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당시 22세)는 78년 납치됐다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발생 1년 전인 86년 7월 30일에 숨진 것으로 돼 있다.
나머지 사망자들은 납치 1∼2년 뒤에 숨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측은 8명의 사인에 대해 "병사이거나 재해에 의한 사망"이라고만 밝혔을 뿐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77년 일본에서 데이트 중 함께 납치된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44)와 오쿠도 유키코(奧土祐木子·46)는 북한에서 결혼해 아들(21)과 딸(18)을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78년 역시 데이트 중 납치된 다른 한 쌍의 남녀는 모두 사망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사망자 8명 중 7명이 납치될 당시 13∼26세의 젊은 나이로 모두 건강했다며 아직도 사망했다는 북한측 통보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망자들이 북한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거나 납치 당시 또는 이후 북한 특수기관이 기밀 누설을 막기 위해 살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앞으로의 국교 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유족이나 일본인들이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을 하거나 확실한 사망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일본 정부는 이를 묻어두고 협상을 진전시킬 수 없는 딜레마를 안게 됐다. 북한이 사망 경위를 확실하게 밝힌다 해도 책임자 처벌과 일본 국내에서의 재판 여부, 유족들의 소송 등 문제가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일본 외무성은 사망 연월일을 북한측으로부터 통보받았으면서도 '비공식 정보'라는 이유로 19일 일부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아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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