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李恩惠)란 인물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일본은 남조선이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을 덮어씌우려고 날조한 가공인물을 들고나와 공화국의 존엄을 손상시키고 있다" 1991년 8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북일 수교회담 때 북한측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일본측이 한일 양국 수사기관의 수사결론을 근거로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인화 교사 이은혜가 1978년 실종된 일본여성이라는 사실을 제기하며 안부확인을 요구한 데 대한 공식 반응이었다.■ 91년 5월 한국 국가안전기획부와 일본 경찰은 이은혜의 실체가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란 카바레 종업원이었다고 동시 발표했다. "이은혜란 일본인 여성에게서 일본어와 일본인화 교육을 받았다"는 김현희의 진술과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경찰이 신원을 확인한 것이다. 그 뒤 일본은 끈질기게 이 여성의 안부 확인을 요구했고, 그 때마다 북한은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다. 회담장 박차고 일어나기와 삿대질 소동 끝에 회담은 8차로 중단되었다.
■ 김현희는 그 때 기자회견에서 "1년 8개월간 침식을 같이 하며 지낸 공작원 교육 때 그녀에게서 강제로 배를 타고 끌려왔으며, 배에서 멀미를 심하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두고 온 어린 자식들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보았다고 했다. 95년에 펴낸 고백록 '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에서는 "이은혜란 이름은 김일성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북한측이 지어준 것이라고 들었다. 교육이 끝난 뒤 그녀는 장기공작원 교육기관으로 옮겨갔다"고 밝혔다.
■ 이은혜가 죽었다는 소식에 일본열도가 들끓고 있다. 사상 첫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예상을 깨고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했다. 피랍자 가운데 이은혜를 포함한 8명이 죽고 5명만 살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에서는 "이러고도 수교를 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족들은 아직 50세가 못된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이 죽었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대남공작에 이용하려고 그랬다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륜을 어겨가며 그 많은 '김현희'를 길러 무얼 얻었는가.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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