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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찍고있는 김 의 석 감독/"이젠 물러설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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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찍고있는 김 의 석 감독/"이젠 물러설 곳이 없다"

입력
200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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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바람과 밝은 달(淸風明月)을 편안히 느낀 때가 언제였던가. 엄청난 상업적 성공(서울 52만명)을 거둔 데뷔작 '결혼이야기'(1992)이후 기억에 없으니 벌써 10년이 됐다. 로맨틱 코미디 바람을 일으킨 새 얼굴, 시대 정서를 빼어난 감각과 세련된 영상으로 짚어내 하루아침에 90년대를 이끌 최고의 상업감독으로 꼽혔던 김의석 감독(54)이었다.그러나 첫 영화의 성공은 자신감이 아니라, 강박이었다. 관객이 절반으로 줄어든 '그 여자 그 남자'(1993)는 '2년생 징크스'쯤으로 여겨 그나마 나았다. '총잡이'(1995)는 감각이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홀리데이 인 서울'(1997)은 홍콩 왕자웨이 감독을 모방했다는 오해와 함께 외면 당하면서 그는 곤두박질을 계속했다. 작품마다 정확하게 절반씩 줄어든 관객이 급기야는 '북경반점'(1999)에 와서 3만명이 됐다. 그에게는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었다.

3년 만에 그가 푸른 달빛에 검을 빼 들고 다시 일어섰다. 내년 설 개봉을 목표로 무협영화 '청풍명월' 촬영을 시작한 지 4개월째. 비장한 그의 목소리가 가을 바람을 가른다. 그러기까지 참으로 긴 세월과 고통이 있었다. 2년이나 걸려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나 거금(60억원)을 투자할 사람도, 배우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흥행에 실패한 상업영화 감독이 겪어야 할 비애였다. 더구나 감독에게는 낯선 무협액션영화가 아닌가.

그는 왜 '청풍명월'을 선택했을까. "어릴 때 '외팔이'같은 홍콩 무협물을 보면서 동양 남자들의 그 비장한 세계가 부러웠다. 적이자 친구인 두 남자. 그래서 한 사람은 차마 칼을 빼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다른 남자는 그를 찌른다. 사랑하면서도 언제 죽을 지 몰라 먼 데서 그 여자의 가야금 소리만 듣고 돌아서는 남자. 서부영화와 달리 동양적 누아르풍이 좋았다. 감독이 되고 난 후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청풍명월'에는 그의 이런 꿈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우리의 역사(조선시대)와 사건(인조반정), 둘도 없는 친구면서 자객과 무관으로 만난 규엽(최민수)과 지환(조재현), 그들의 운명적 대결과 반전. "무거운 갑옷에 무거운 칼을 들고 펼치는 한국식 무협을 보여주려 한다. 홍콩영화처럼 터무니없는 과장도, 일본 사무라이 영화처럼 잔인하지도 않은 비장한 그 무엇. 이국적이지 않으면서 시각적으로는 용인되는 화려하고 다양한 액션. 결국은 우리 얘기를 내 방식으로 했을 때 관객에게도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말처럼 쉽게 얻어지지 않기에, 배우들 역시 이런 연기가 처음이기에 "이것이다" 싶을 때까지 찍고 또 찍는다. 늪에 빠진 기분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최민수는 지금도 진검 세 자루를 집에 구해 놓고 틈만 나면 휘두른다. "촬영현장에서도 그 에너지를 실감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겁 없는 도전과 자신감."

조재현과 최민수. 감독도 둘 다 너무나 강해 걱정했다. "강하지만 정반대다. 현장에서는 외향적이고 남성적이고 굵은 최민수만 보인다. 조재현은 부드럽고 조용하다. 그러나 촬영에 들어가면 조재현의 눈빛이 달라진다. 영웅에 가까운 로맨티스트인 규엽과 이성적이면서 좀 더 평범한 지환에 딱 어울린다."

'쉬리'를 보면서 그는 '북경반점'이 왜 실패했는지 알았다. "세상이 달라졌는데, 상업영화 감독인 나는 달라지지 않았구나. 기호나 감각이 아니라 정신이 젊어져야 한다. 감각과 나이에 맞는 깊이를 가진 영화를 만든다면, 장르와 소재와 상관없이 대학(중앙대 연극영화과)시절의 단편 '천막도시'(1984) 이래 계속 추구해온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미덕'에 관객들이 공감할 것이다. '청풍명월'이야말로 내 나이에 맞는 영화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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