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대로 국회 국정감사가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정치싸움의 장(場)으로 변질되고 있다. 올 국정감사가 시작됐을 때, 우리는 '정치논리에 함몰된 국정감사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지적한 바 있으나, 역시 정치권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국정감사 시작 하루만인 17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감사에서 보여준 여야 중진의원의 욕설과 추태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대권(大權)만을 좇아 정상궤도를 이탈한 우리 국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싸움의 소재도 역시 병풍(兵風)이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사무총장과 부총재를 지낸 하순봉 의원과 현정부에서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민주당 천용택 의원이 꼴불견의 주인공이었다.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병풍만을 가지고 입씨름을 벌이더니 급기야 두 의원이 격돌했다. "이회창이가 대통령 되면 이민 갈게" "너희들이 정권 잡을 때 그런 식으로 했냐"(천용택 의원), "인간말종" "너희들이 뭐야, 임마"(하순봉 의원) 등의 막말에 이어 삿대질이 오갔다. 그리고 흥분한 당사자들이 물병과 유리컵을 집어 던지려는 순간, 주위의 만류로 싸움은 육탄전 직전에 가까스로 끝났다. TV에 비쳐진 두 의원의 꼴이 시정잡배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의 모든 부처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한, 현재의 국정감사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지 이미 오래다. 그나마도 하라는 국정감사는 하지 않고 정치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이제는 '국정감사 무용론'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국민은 끝도 없는 정치싸움에 벌써 신물이 났는 데 정작 정치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대편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국정감사를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모두 걷어치우든지 양단간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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