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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귀족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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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귀족 은행

입력
200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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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더 쉬는 것이 아니라 닷새동안 더 잘하겠습니다." 7월부터 주5일 근무에 들어간 은행 입구에 내 걸린 문구다. 이 말에는 토요일 휴무에 대한 노사정(勞使政)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들이 주5일 근무를 시작한데 대한 미안함이 깔려 있다. 고객 서비스를 한 층 강화하겠다는 다짐이 행간에 스며 있기도 하다. 경위야 어찌 됐든 주5일 근무를 계기로 서민들에 대한 서비스가 더 나아진다면 은행이 하루쯤 더 쉰다고 불평할 고객은 없다.■ 그러나 요즘 은행은 너무 귀족적이다. 온통 부자손님 맞을 준비에 들떠 서민들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보통예금의 경우 예금 잔액이 10만∼50만원 미만이면 아예 이자를 한푼도 주지 않는다. 이자가 붙지 않는 소액예금 통장이 전체 계좌의 절반(3,500여만 개)이고, 예금액 합계는 무려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고객 예금을 불려주는 곳이 은행이라는 사전적인 정의마저 수정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금융상품 개발과 자산관리에는 눈에 불을 켜고 있다. 금융권에 불고 있는 소위 프라이빗 뱅킹(PB) 바람이 그것이다.

■ 지난 주 한 은행은 10억원 이상의 고액 예금자만을 대상으로 각종 금융·세무·부동산 상담을 해주는 프라이빗 뱅킹 사업을 시작했다. 전담 PB팀을 두고 미국 유수 병원의 의료예약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거액의 자문료를 지급하고, 광고 및 이미지 통합(CI)작업에도 수 억원을 썼다. 외국계 은행의 PB전문가들을 스카우트 하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수 십억원이 들어간 것이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다각화의 일환이라는 게 은행관계자의 설명이다

■ 은행들이 지나치게 수익성 위주 사업에만 열을 올린다고 섣불리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은행간 무한경쟁시대다. 1997년 33개였던 은행 수가 절반 가까운 20개로 줄었다. 부자 고객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은행은 공익(公益)을 추구해야 할 금융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국민들의 혈세로 마련된 공적자금이 은행에 투입된 것도 이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 노력 없이 서민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소홀히 하고 부자고객만 찾아 나서는 은행들의 행태가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창민 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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