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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北日정상회담을 보고

입력
200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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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특수기관의 일부 망동주의자들이 대남 공작을 위하여 일본인을 납치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공식 사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김 위원장은 괴선박 사건도 마찬가지로 솔직히 시인하고, 경위 조사와 적절한 조치를 다짐했다.이미 김대중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통 큰 정치'를 선보인 인물답게, 일본 열도를 향해서도 그 독특한 면모를 과시한 셈이다. 이날 북일 양국 정상이 발표한 평양선언은 두 나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기본적인 합의를 이뤘음을 시사한다. 평양 선언은 구체적 협상 과정에서 논란할 부분이 있지만, 두 나라가 오랜 적대와 단절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 것임을 예고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필자는 얼마 전 정계 인사와 함께 평양을 방문, 백화원초대소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찬하면서 장시간 얘기를 나누었다. 이 때 김위원장은 필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자극을 주었다. 그는 남쪽의 정치·외교·경제·사회 등 모든 움직임에 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나름대로 확고한 민족 의식과 한반도 정세에 관한 인식을 보여주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 경험을 토대로 이번 북·일 정상회담을 분석하면,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전개와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한다.

우선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는 시간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 회담을 통하여 수교의 최대 장애물이 제거된 이상, 이르면 한국 대통령선거 이전에 수교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는 수교이후 무상자금 지원으로 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 위원장이 오랜 현안이었던 일본인 납치문제를 대담하게 시인한 것은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과 개방을 향해 나아가려는 절박한 의지를 읽게 한다. 북한은 이미 한국과 화해·교류·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을 뿐 아니라,시장경제 도입과 대일 관계에서도 매우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앞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동북아 신국제질서의 주요한 행위자로서 등장할 것임을 확인하게 한다. 김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시 파격적 외교 행보를 보인 사실은 앞으로도 주변 정세를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갈 것을 예고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도 이번 정상 회담을 통해 일본 외교의 새로운 행태와 특징을 선보였다. 평양에 도착한 고이즈미 총리는 실무적이면서도 근엄한 표정, 감정 표현과 몸짓의 절제 등으로 일본 특유의 외교 양식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다정다감한 보통 일본인의 감상적 태도는 거의 볼 수 없었다. 고이즈미의 이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외교 행보는 김 위원장과 같은 독특한 인물과 상대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북한 문제를 비롯한 국제 상황을 과거에 비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처리해 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북일 국교정상화를 '주어진 상황'으로 인식하고, 계속하여 전개될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을 염두에 두면서 새로운 동북아 신국제정치 질서에 유효하게 대응하기 위한 외교안보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는 햇볕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온 김대중 정권의 외교적 마무리이기도 하거니와, 새로운 정권이 담당해야 할 중대한 과제다. 앞으로 전개되는 북미, 북일간의 모든 외교는 우리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일본과 미국의 대북 접근이 남북관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새롭게 전개되는 동북아 신국제정치 질서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신중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한양대 국제학 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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