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정상회담이 열린 17일 일본인들은 요코다(橫田) 메구미라는 소녀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착잡한 심정에 빠져들었다. 그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의 상징적 존재였다. 납치 당시 중학교 1년생으로 13세였다. 납치 피해자들의 집회에는 항상 보조개가 패인 귀여운 메구미양의 사진이 전면에 내걸려 보는 사람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그의 이름은 북한이 통보해준 사망 피랍자 8명에 들어가 있었다.그는 1977년 11월 15일 방과 후 학교 배드민턴 서클에서 연습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던 중 실종됐다. 집에서 250m 떨어진 장소까지는 친구와 함께 왔으나 친구와 헤어진 뒤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일본 경찰은 한동안을 기다리다가 공개수사에 나섰고 '여중생 실종 사건'으로 사회적 관심을 끌었으나 단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6년 한국에 망명한 북한 공작원 안명진(安明進)씨가 일본의 한 강연회에서 "1970년대 후반 13세의 소녀가 일본에서 납치됐다"며 "배드민턴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소녀였다"고 증언해 북한으로 납치됐을 가능성이 떠올랐다. 안씨는 "그 소녀는 북한 말을 다 공부하고 나면 집으로 돌려 보내준다는 말을 믿고 있다가 거짓말임을 알게 된 18세 때쯤 한때 정신적 충격으로 입원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97년 초 한국에 망명한 다른 북한 공작원이 얼굴의 보조개가 특징인 메구미를 북한의 공작기관에서 보았다고 진술했다. 한국 정부는 이 사실을 비공식적으로 일본측에 전달, 일본 경찰은 북한에 의한 납치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여중생이 납치됐다는 충격에 납치의혹을 재조사하고 북한에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여론이 비등해졌다. 1997년 3월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다 시게루(橫田滋·69)씨가 회장을 맡아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 연락회'가 발족되고 후원자들이 늘어나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북한과의 대화 채널이 끊어질 것 등을 우려해 납치문제에 미온적이던 일본 정부도 5월 메구미를 포함하는 7건 10명을 북한에 의한 납치로 인정하고 북일 교섭 테이블에 정식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북한측은 북일 정상회담에서 메구미의 딸이 북한에 살고 있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올해로 38세가 되고 건강체질이었던 메구미가 왜 숨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딸까지 두었다는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은 메구미의 딸을 평양에서 면담했는데 10대로 보였으며 일본 귀국 의사를 물었으나 소극적인 대답을 했다고 전했다. 딸은 어머니가 10년 전에 죽었다고 말했다.
메구미의 사망 통보로 일본인들의 머리 속에는 이제 그녀의 소녀적 귀여운 사진만이 영원히 남게 됐다. 메구미의 어머니 요코다 사키에(橫田早紀江·66)씨는 17일 기자회견에서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그런 통보를 믿을 수 없다"면서 울부짖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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