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직도 "돌아오고 싶다"고 말한다. 36년 동안 이국 땅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정년을 2년 앞두고 은퇴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 톨레도 사람들은 한국인 의사를 위해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그가 열번째 시집을 상재하기 위해 귀국했다.마종기(63)씨가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문학과지성사 발행)를 펴냈다. 그는 그간 여러 권의 시집을 냈으며 한국에 자주 오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소식은 그러나 한 번도 겹쳐진 적이 없었다. "시집에 직접 사인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웃는다. 1년에 적어도 8편은 발표해야 한다고, 그렇게 발표한 시 40여 편을 모아 5년마다 시집을 내야 한다고 다짐한 그이다. 등단 이후 지금껏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왔다. 48편이 묶인 '새들의…'는 '이슬의 눈' 이후 5년 만에 출간하는 시집이다.
그는 여전히 쉽고 투명한 언어를 부리지만, 시의 울림은 가늠하기 아득하도록 깊어졌다. '가령 꽃 속에 들어가면/ 따뜻하다./ 수술과 암술이/ 바람이나 손길을 핑계 삼아/ 은근히 몸을 기대며/ 살고 있는 곳.'('축제의 꽃'에서) '잘 가라. 잠이 들 때면/ 매일 밤 나를 떠나는 내 혼,/ 쓸쓸한 밤의 여정에는/ 멀리 뜬 별들도 섞여 있던가.'('잡담 길들이기1')
고교 때 문예반이었으며, 아버지(동화작가 마해송)의 권유로 의사가 되었으며, 담배 10갑 어치 인턴 월급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워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 도미 전 이미 시집 2권을 냈지만 문우들은 그가 "미국에 가서야 시인이 된 것 같다"고 한다.
낯선 나라는 그를 아프게 했다. 그 나라에서 사람이 죽은 뒤 오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꽃이었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미국인 환자는 "영등포의 춘자가 기억난다"며 이죽거렸다. 가슴에 쌓인 말은 너무 많은데 모국어는 막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를 썼다. 평론가 고(故) 김현은 이국에서 보내오는 그의 시에 가슴이 찔렸다고 했다. "딜레탕트 부르주아의 모습을 한 시인이 삶의 의미를 되묻는 영원히 떠도는 떠돌이 편력인으로 바뀌는 모습, 외국 거주자의 감상적 제스처라고 보려는 순간 그의 시의 보편성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늘 모국에 대한 부채 의식에 시달리며 그 빚을 갚기 위해 돌아왔다는 그는 아직도 평온하게 몸을 누이지 못하는 것 같다. 시인은 '내 집은 땅, 혹은 빈 배'라고 노래한다. '평생 눈감지 못하는 물고기는/ 꿈 속에서 두 눈 감고 깊이 잠들고/ 잠자는 새들의 꿈은 나무에 떨어져/ 달 없는 한밤에 잠든 나무를 깨운다/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내 집'에서)
1980년대 어느날 마씨는 한 질문을 던졌다.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하느님/ 그러나 시인의 용도는 무엇입니까.'('시인의 용도·1'에서) 시인은 아직 해답을 듣지 못했다. 누구도 답할 수 없겠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그가 이 질문을 놓지 않는 한 시인의 발걸음은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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