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일본인 납치를 전면적으로 인정한 것은 물론이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 일본에 충격을 주었다. 일본측이 예상하지 못했던 김 위원장의 태도는 기대했던 것보다 진전된 것이었지만, 일본 국민들은 상당수 피랍자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놀랬다.▶일본인들의 분노와 대북 비난
이날 하루 종일 도쿄(東京)의 중의원 의원회관에 모여 회담 진행상황을 지켜보던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6명 사망, 4명 생존'의 소식이 전해지자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번 북한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납치 피해자 가족 모임과 이들을 지원해 온 초당파 의원연맹은 기자회견을 통해 "납치가 북한의 국가범죄로 저질러진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요구했다. 일본 언론은 이들의 분노에 찬 회견을 생중계했다.
이들은 사망자들의 경우 자연사인지 북한에 의해 살해된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생사에 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또 20여년 간 북한이 납치를 인정하지 않다가 갑자기 생존자와 사망자를 밝혔다고 국교정상화 교섭을 재개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는 불만도 표했다.
이들의 충격과 반북 감정, 북일 국교정상화에 대한 불만은 일반 일본인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어 앞으로도 한동안 일본 내에서 북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납치 인정
일본 정부는 1977년부터 1983년에 걸쳐 일본 국내외에서 발생한 8건의 실종사건에서 남녀 11명이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북한에 해결을 요구해 왔다. 북한은 그 동안 "납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일본측의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내에서도 "의혹에 불과하지 명확한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북한에 의한 납치를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우리 특수기관 중에 (경거)망동주의와 영웅주의가 있었다"며 "내가 알고 난 뒤 조사해 처벌했다"고 밝혀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가 사실이며 이들이 북한의 공작 활동에 활용됐음을 시인했다. 여기에 북한측은 일본측이 납치로 확정하지 않았던 남자 2명의 사망까지 통보해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들이 주장했던대로 납치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김 위원장이 비록 생존자들의 가족면회를 약속했지만 일본 국민의 큰 관심을 모았던 납치 피해자들이 모두 숨진 것으로 드러나 유족과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납치 실종 사건
일본인 납치 사건은 1977년부터 198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피해자 중에는 1977년 11월 니가타(新潟)시에서 하교 길에 행방불명돼 이번에 숨진 것으로 확인된 당시 여중생 요코다(橫田) 메구미(당시 13세)까지 포함돼 있다. 북한측은 요코다 메구미의 딸이 북한에 살고 있다고 밝혀 납치 피해자들의 북한 내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등에 더욱 궁금증을 낳고 있다.
또 1983년 영국 어학 연수 중 요도호 납치범들에게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납치된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당시 23세)도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측이 아리모토 납치와 사망을 확인해 준 것은 앞으로 요도호 납치범들도 일본측에 신병을 넘겨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金賢姬)의 일본어 교사 '이은혜'라고 일본 경찰이 추정해 온 다구치 야에코(당시 22세)도 숨진 것으로 통보돼 김현희의 증언이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 일본 경찰의 조사결과대로 북한 공작원들이 납치된 일본인으로 위장해 일본과 한국에서 활동하거나 공작원의 일본어 교육을 위해 일본인들을 납치했음이 명명백백히 드러난 것이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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