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인 사내가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얼굴과 눈부신 체격, 매혹적인 허스키 보이스의 그가 1956년 어느날 LA 베벌리힐스 한 호텔의 수영장에서 어슬렁거리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의 눈에 띈다. "영화 해볼 생각 없어요?" 어설프게 대답한 "예"가 가져온 결과는 전설적인 배우 제임스 캐그니의 상대역.벼락스타가 된 그는 이후 두어 편의 작품 후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때 그에게 새 일자리 제안이 들어온다. 파라마운트영화사의 영화담당 사장직이다. 프로듀서 경력이라고는 없던 34세의 이 사내는 하루아침에 할리우드의 최고자리에 오른다.
드라마의 대본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전형적인 이 인생스토리는 로버트 에반스라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영화제작자의 이야기다. 할리우드에서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불행을 맛본 그는 몸 전체로서 '할리우드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의 인생 역정을 담은 '그 아이는 영화에 나온다(The Kid Stays In the Picture)'가 최근 다큐멘터리로서는 드물게 극장가에서 히트를 치고 있다.
그의 인생은 2막으로 구성된 연극 같다. 1막은 '대부' '러브스토리' '차이나타운' 등 할리우드 명작의 제작자이자 '러브 스토리'의 여주인공 알리 맥그로와 결혼한 행운아가 되는 클라이맥스의 연속.
그러나 2막은 실패의 연속이다. 아내 알리 맥그로가 스티브 맥퀸과 결혼하면서 그는 이혼을 당했고, 이후 세 번의 결혼 역시 모두 실패했다. 코카인을 가까이하다 결국 거래에까지 몸담아 쇠고랑을 찼다. 7년 만에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과 같이 만든 재기작 '코튼 필드'는 흥행에서 참패하고, 이 영화의 투자자가 살해당하자 그는 용의자 명단에 오른다. 이후 십 여년간 그는 영화계에 더 이상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97년 이틀 사이 세 번이나 중풍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의 영화는 94년 발표한 같은 제목의 자서전을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 오디오 북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권유해서 만들게 됐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자연스런 말투의 로버트 에반스의 내레이션이 흥미롭고 그가 제작, 출연한 영화 장면과 스틸사진, 신문 기사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든 화면은 마치 사진들이 영화처럼 움직이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무엇보다 극적인 그의 삶이 겹쳐져 극영화보다 재미있는 다큐멘터리가 탄생했다.
이 다큐로 그는 인생 제 3막을 열었다. 평단의 쏟아지는 찬사와 대중적인 호응에 힘을 얻은 그는 내년 자신의 인생 3막부터를 새롭게 담은 다큐멘터리 속편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윤정 재미 영화프로듀서·filmp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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