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은 백악관의 실리 외교 실험대에서 창조된 프랑켄슈타인이다.'15일 발간된 뉴스위크 최신호(23일자)는 '어떻게 미국이 후세인을 만들었나'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중동 정세와 정권의 이해 관계에 따라 후세인을 이용하려고 했던 미국의 근시안적인 외교 정책 속에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전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괴물로 둔갑했다는 주장이다.
1983년 12월 바그다드에서 이란과의 8년 전쟁을 벌이고 있던 후세인 대통령은 미국 특사를 만났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보낸 특사는 역설적이게도 현재 이라크 공격의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다. 럼스펠드 장관은 당시 허리춤에 총을 차고 있던 후세인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고 핵무기 개발에 애쓰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에게 눈앞의 위협은 이라크가 아니었다. 79년 이란혁명을 발판으로 중동 전체를 넘보던 이란의 세력확장을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었다. 미국은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택했다. 후세인 대통령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럼스펠드 장관은 양국간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을 다짐했다.
이후 미국은 이라크에 아낌없는 지원을 시작해 비극의 싹을 키웠다. 뉴스위크는 전·현직 정부 관리의 증언과 정부 기밀 자료들을 인용, 레이건 정부가 이라크에 위성사진과 헬리콥터 등 군사정보와 장비는 물론 박테리아와 균류 등 생화학무기로 악용될 수 있는 물질까지 무차별적으로 제공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과시한 후세인 대통령을 중동지역의 기둥이라며 치켜세웠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계약서를 들고 이라크로 몰려들었고 미 의회 지도자들은 후세인 대통령 초청을 위해 러브 콜을 보내기도 했다.
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할 당시 후세인 대통령의 과대망상증은 극에 달해 있었다.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라는 외교현실에 직면한 조지 부시 행정부는 걸프전을 통해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후세인 대통령의 권좌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후세인 대통령을 제거한 이후 폭압정치에 시달리던 시아파와 이란과의 결탁, 쿠르드족의 반란 등 이라크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때문에 미국은 후세인 대통령이 군사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방조했다. 걸프전 이후 전쟁 포로에 대한 후세인의 가혹 행위를 조사한 보고서에는 군사기밀문서 직인을 찍었다. 92년 대선에서 이슈로 떠오르면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클린턴 행정부도 95년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쿠르드 반군을 은밀히 지원하는 등 후세인 대통령 제거에 나섰지만 정치적인 제스처에 그쳤다. 이를 두고 클린턴 대통령이 실제로 행동에 나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라크에 대해 강경 정책을 취하지 않는다는 불평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해결사로 나섰지만 험로가 예고돼 있다. 뉴스위크는 "후세인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개처럼 화학무기를 미군에 살포하고 미국 도시에 천연두나 다른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등 최후의 폭력활동을 전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후세인 대통령 축출에 성공한다 해도 이라크에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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