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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北·日회담과 동북아 신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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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北·日회담과 동북아 신질서

입력
2002.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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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7일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이 회담은 광복 이래 양국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대면하는 최초의 역사적 이벤트로, 북한과 일본의 양국관계는 물론이고 남북한 관계 및 동북아 정세에도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이 회담이 전격적으로 마련된 것은 양국 나름의 정치적 의도와 계산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파악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 국가로 낙인을 찍힌 김정일 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미국의 살벌한 눈초리를 회피하고 체제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 받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또한 최근 경제개선 조치를 속속 추진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식량, 에너지, 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빈사상태에 놓여있는 경제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추구하는 일이 급선무가 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대일 관계 정상화는 '청구권 자금'의 대량 유입과 그에 따른 상당한 '특수'를 기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고이즈미 총리를 평양에 불러들이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대외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대미 관계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노리면서도 북한 경제 재건의 단서를 확보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카드였을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의도는 무엇인가? 역사교과서 마찰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서 보듯이 그의 아시아 외교는 사려부족과 무관심 그 자체였다. 이렇게 볼 때 고이즈미 총리의 이번 평양행은 다소 의외로 여겨지며 동시에 역설적으로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엿보이는 결단이기도 하다.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이 이라크 침공 계획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을 틈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나름의 외교적 이니시어티브를 발휘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그의 역할에 대해 기대를 표명한 바 있다.

냉전종결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둘러싼 4강 국가의 영향력 경쟁 속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한과 교차수교를 맺고 있으며 미국은 압도적인 국력을 앞세워 한반도 정세를 주도해왔다.

이 속에서 일본은 북한과 10여 년 넘도록 국교수립을 위한 교섭에 임해왔으나 교섭은 난항을 거듭할 뿐이었다. 고이즈미 총리가 주장하는 한반도 6자 회담 구상도 따지고 보면 일본이 더 이상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인식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결과에 따라서는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큰 지각변동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중단된 북일 수교교섭의 재개와 잇따른 양국관계의 정상화 가능성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북일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일각을 해체하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북한체제의 개방,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핵·미사일 등 이른바 대량살상무기(WMD)의 억제 문제에 관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가능성이다. 이 문제는 미국이 최대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안으로, 일본으로서도 미사일 발사 유예 시한연장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 수용을 북한에게 강력히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이번 회담이 북한의 생존은 물론 개혁, 개방 추진의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하며 더 나아가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는 획기적인 단초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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