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회사 중에서 근로조건이 그나마 좋은 편에 속한다는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3교대로 근무하면서 1년 내내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 채 열심히 다니고 있다. 낮과 밤을 바꾸어 가며 한 달을 근무하고 받는 임금은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2명을 가르치면서 학원비와 교재비 대기도 빠듯하다.다른 사람들이 다 쉬는 일요일에 아내와 아이들과 가까운 공원에 가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고 이젠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조차 미안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가려면 최소한 가까운 곳에 가서 구경도 하고 외식도 해야 하는데 빠듯한 임금으로 아이들의 뜻을 다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2달에 한번 나오는 상여금이 위안이 되고 월차며 연차휴가 보상비가 나오면 용돈이라도 생긴다는 생각에 한달, 1년을 보내다 보니 20여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청춘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주5일 근무제 때문이다. 5일 일하고 2일을 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싶지만 왠지 나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 같다.
최근 섬유업종에 인력난이 가중되다 보니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3교대로 쉴새 없이 돌아가야 하는 공장 특성상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임금이 좀 깎여도 주5일 근무하니까 여가생활도 하고 좋다는 방송이 나오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동료들과 둘러 앉으면 "주5일 근무에 들어간 금융업 노동자들이야 낮에만 일하면 되고 임금도 꽤 많이 받으니까 속 편한 소리를 한다"는 얘기부터 "이래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신세한탄이 나온다. 회사에 들어올 때는 근로조건도 꽤 괜찮았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3D업종으로 분류되는 곳에서 일하게 된 운명이 야속하다고나 할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다면서 왜 제조업 노동자들의 얇은 호주머니를 더 가볍게 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토요일을 무급화하고 일요일마저 무급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25%의 할증률을 적용하고 연월차 휴가는 통폐합하여 모두 15∼25일로 축소하면 수입이 줄지나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대충 계산해도 토요일 무급화로 임금이 지급 안되면 한달에 15만여원의 기본급이 줄어든다. 연월차 축소로 연 50만여원이 공중으로 사라지게 되며 또 기본급이 낮아지니 상여금 액수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정부는 임금을 보전해 주겠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지금도 나쁜 아빠이고 남편인데 더 나쁜 가장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주5일 근무제는 누구나 바라는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기존의 급여수준이 저하된다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될 경우 기존에 받던 급여수준이 저하되지 않도록 임금보전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영식 K기업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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