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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추석!/'여성도 즐거운 명절'추석문화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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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추석!/'여성도 즐거운 명절'추석문화 바꾸자

입력
2002.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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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며느리, 딸. '여성'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가 다가왔다. 해해년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명절이다.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함께 보내야 할 이 날은 여성들이 가장 많은 설움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음식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모두 여자의 몫이라는 집안 남자들의 가부장적인 모습. 시댁과 처가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여성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한국여성민우회는 1999년부터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만들기 위해 '웃어라, 명절!'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남자들이 바뀌어야, 모두가 평등해져야 명절이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 여러 가지 제안이 이어졌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자신의 집에서 우선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자.

▶5일전/채팅이용 가사분담 회의를

대부분의 대가족은 평일과 주말을 이용해 벌초를 한다. 남자 형제들 중심으로 조상 묘소를 다듬으며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명절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절에는 당연히 장남의 집에 모인다는 생각과 음식준비는 한 집에서 도맡아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한 회의를 여는 것이다. 한곳에 모이는 것은 어려우니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메일, 채팅을 이용해 명절을 보내는 방법을 상의하는 것은 어떨까.

"2년 전부터 차남인 우리 집과 형님 집에서 번갈아가며 명절을 지내고 있다. 명절 때마다 장남인 형님 집에 모였다. 그러다 보니 준비하는 형수님은 너무 할 일도 많고 명절 때 친정에도 갈 수 없었다. 아내의 제안으로 번갈아가며 치르게 됐다. 지금은 명절 당일 오후가 되면 각자 친정으로 떠난다. 형수님은 물론 형님도 좋아하신다. 조상 모시기가 장남만의 몫은 아니다. 서로 일을 나누고 모든 형제가 부모를 기리는 마음은 같지 않은가."(전북 군산시 손명진씨)

"우리집 명절의 시작은 제사음식을 형제가 골고루 나눠서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시동생과 동서, 큰집인 우리가 만들어야 할 음식을 나눈다. 작은 집에서는 지짐, 떡, 기타 장보기 등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일을, 우리집은 따뜻한 음식, 생선 등 명절 당일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이렇게 서로 음식을 나누어 준비해오면 한쪽에만 집중됐던 시간과 수고를 덜 수 있어 좋고 몸과 마음도 여유로워진다."(이미경 국회의원)

▶1일전/장보기·전 부치기는 남자몫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명절이 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족들의 식사. 제사를 지내든 그렇지 않든 가족의 식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여간 큰 일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명절이 지나고 나면 여성들에게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병까지 생겨나기도 한다. 대안은 없을까.

"본가가 큰 집이라 수십 명의 친척이 모인다. 매끼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다. 음식 마련을 위한 장보기는 남자들의 몫이다. 물론 남자들이 장보는 일에는 서투르다. 그래서 작은어머니를 대장으로 모시고 간다. 작은어머니가 물건을 고르면 남자들은 주로 짐꾼 역할을 맡는다. 음식 준비도 남녀의 역할이 다르다. 기본적인 음식거리 다듬기는 여자들이 하지만 남자 형제들도 전과 지짐 등을 부치는 단순한 일은 한다. 서로가 힘들지 않고 즐거울 수밖에 없다."(서울 종로구 권오현씨)

"꽤 오래 전부터 명절이면 장보기는 물론 설거지까지 부부가 명절 준비를 하고 있다. 차례음식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친척들도 도란도란 같이 준비한다. 남편보다는 내 쪽에 친척이 많아서 명절 전날 저녁이면 장녀인 우리 집으로 친정 식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명절? 서로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고 아이들과 윷놀이도 한 판 벌이며 함박웃음을 지어보는 시간이다."(한명숙 여성부 장관)

▶당일/차례후 며느리끼리 영화관람

여성들이 딸과 며느리라는 두 입장을 두고 고민을 하는 날이다. 친정에 갈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시댁일 뒤치다꺼리로 쉴 틈도 없다. 방법은 있다. 일은 모두 함께, 즐거움도 모두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갖자.

"사촌형제까지 모두 10형제 정도니 가족들까지 모이면 50∼60명이 된다. 그러나 식사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전, 부침개 등을 모아 뷔페식으로 차린다. 설거지도 줄이고 음식도 남지 않아 좋다. 또한 설거지는 조카들의 몫이다. 조카들이 대학원생이나 대학생,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수 있다. 6년 전부터 해왔는데 이 일에 남자 조카들도 참여하는 건 당연하다."(서울 송파구 정희경씨)

"결혼 12년차인 다섯째 며느리다. 3년 전부터 명절 오전에 차례를 지내고 다섯 며느리가 영화를 보러 가고 있다.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은 일하는 명절은 이제 끝. 동서들끼리 영화를 보고 커피도 한 잔 마시는 동안 남자 형제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등산을 하거나 근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다. 남자들도 덜 미안해 하고 여자들은 화가 쌓이지 않는다. 온 가족의 화목도는 오히려 높아졌다."(서울 양천구 김수영씨)

/정상원기자 ornot@hk.co.kr

■"명문종가도 차례상 단출해요"/여성에만 부담주는 일 없어

'전통적으로 그래 왔다.' 명절 가사노동 분담에 대한 남성들의 반론은 대개 그런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역사학자와 유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서(禮書)와 역사서 속에 나타난 명절 풍속은 지금처럼 온전히 여성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힘든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통과 예절을 숭상해 명절이 되면 여성들이 가장 고생할 것 같은 명문 종가. 그러나 그 곳에서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제사상을 차리는 일은 없었다.

'명문 종가를 찾아서'의 저자 성균관 여성 유도회(儒道會) 이연자 중앙위원은 "배고프던 시절에는 명절이면 음식을 풍족히 해서 나눠먹는 것이 미덕이라 종가에서는 으레 음식을 많이 했다"며 "이제는 명문 종가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부분보다 의례의 뜻을 지키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리는 음식 문화는 조선시대 '상이 화려할수록 양반'이라는 그릇된 경쟁의식 때문에 나온 잘못된 전통이라는 것. 실제로 이 위원의 책에 소개된 800년 역사의 일직 손씨 정평공 손홍량 종가도 과일, 송편, 차 한 잔과 다식 한 접시 등 7가지로 추석 차례상을 차리고 있다.

추석은 원래 전통 가부장제 가족 구조의 여성 위치와도 관계가 크다. 추석을 전후해 친정을 겨우 한나절 정도 다녀오거나 중간쯤에서 친정 식구를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즐긴 '반보기'는 유교의 전통이 빚어낸 풍속이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신라 초기 유리왕 때 추석 무렵이면 여성들이 편을 나눠 두레 길쌈을 한 뒤 술과 음식을 먹고 춤과 온갖 놀이를 벌이던 행사로 '가배'(嘉俳)가 있었다. 추석의 순우리말인 한가위의 어원이었던 이 행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명절은 또 다른 일상탈출의 장이었다는 기록도 제시되고 있다.

/정상원기자

■"가부장적 명절문화 문제있다" 90%/여성민우회 설문 조사

2002년 추석, 한국의 명절 평등도는 달라지고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명절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고 장남 중심의 명절 지내기 풍조에도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최근 국민 691명을 대상으로 차별적인 명절 문화를 바꾸기 위한 '바뀐 명절을 찾아라'라는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제사나 명절에서 가부장 중심의 전통적인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대답이 응답자의 90%를 차지했다. 특히 명절 식사준비는 여자들의 몫이었다는 응답이 69.5%, 설거지는 여자들만 한다는 응답이 82.4%나 되는 등 명절 가사노동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많았다. 또 명절은 장남 집에서만 지낸다는 대답이 74.3%를 차지했으나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도 24.3%로 나타났다.

명절을 보내는 곳도 여전히 시댁 중심인 것으로 드러났다. 명절 당일 친정에 가기 어렵다는 답이 55.6%. 한편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고 달라졌다는 응답자도 20.5%에 달했다. 지난 8월 실시된 이번 설문조사의 응답자 691명 가운데 남자는 22.8%, 여자는 77.2%였다.

한국여성민우회 김선화 부장은 "많은 국민들이 여성을 힘들게 하는 명절 풍속이 변화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아직도 벽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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