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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되찾는 강릉 중앙시장 르포/ 수해로 집도 없지만 그래도 추석은… "희망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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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되찾는 강릉 중앙시장 르포/ 수해로 집도 없지만 그래도 추석은… "희망을 팝니다"

입력
2002.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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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들어도 추석인데, 이거라도 팔아 차례는 지내야지."14일 아침 강원 강릉시내 한복판의 중앙시장. 이날도 복구작업으로 어수선한 시장바닥 한 켠 길바닥에 김정임(73·강릉시 월호평동) 할머니가 나와 상추 세 소쿠리를 조심스럽게 풀어 놓았다. 수해로 집을 잃어 경포중학교에서 지내고 있지만 아무래도 추석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텃밭에서 상추를 따다가 내다팔고 있다. "그 큰물에도 용케 살아 남은 이 상추가 복덩이야. 요즘은 상추 금이 좋아 하루에 2만원 벌이는 해."

태풍 '루사'로 지하와 1층상가 전체가 흙탕물에 잠겼던 강릉 중앙시장이 추석명절을 앞두고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1만6,000여평에 달하는 시장 곳곳에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더미가 여전히 산을 이룬 채 악취를 뿜어내고 있지만 벌써 상인들이 곳곳에 물건을 벌여놓고 시민들도 제법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장현저수지가 붕괴되는 바람에 집은 물론이고 논밭까지 다 못쓰게 됐다는 박달막(84·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할머니는 마을 뒷산에서 밤과 석류를 따서 나왔다. "65년전 어마어마한 비가 내렸던 '병자포락(丙子浦落)' 때 집 잃고 논 잃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자식들 건사하고 잘 살았어. 지금은 사방에서 도와주겠다는데 뭔 걱정이야." 할머니는 그러면서 "물건 팔아서 우리 증손자 추석선물도 샀다"며 품에서 앙증맞은 아기옷을 꺼내 자랑해 보였다.

노점뿐 아니라 청소를 끝낸 점포에도 새 물건들이 속속 들여지고, 한쪽에서는 물에 젖은 물건들을 싸게 처분하는 호객소리로 소란스러웠다. 비 피해를 입지 않은 가게에서는 피해 상인을 위해 가게 한쪽을 선뜻 내주기도 했다. 이웃의 옷 가게 한 구석을 빌려 속옷 장사를 다시 시작한 정모(41)씨는 "이번 수해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인정만은 얻었다"며 고마워했다.

가장 큰 수해피해를 입은 지하 수산물시장의 상인들은 중앙시장 옆 은행나무 주변에 모여 새벽시장을 열고 있다. 15일부터는 남대천가로 옮겨가 중앙시장이 완전복구될 때까지 임시 어시장으로 쓰기로 했다. 오징어를 팔던 박남석(朴南錫·55)씨는 "시장이란 본래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며 "중앙시장이 활력을 되찾으면 강릉 전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강릉=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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