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그림을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보지 못한다. 괴물과 광기, 참혹과 전율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단 한편의 나체 그림 '나체의 마하' 는 그에게 외설 작가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그래서 그는 고약한 작가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영남대 법대 박홍규(朴洪圭·50) 교수는 그런 평가를 뒤집으려 한다. 그에게 고야는 권력을 중심으로 한 삶에 파탄을 선고한, 반권력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고야는 사라고사 남쪽 후엔데토도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회 제단 등을 금으로 도금하는 직공이었는데 배우지 못해 유언서도 작성하지 못했다.
고야는 열 세 살에 데생을 배워 그림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왕립 미술아카데미 선발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으니 천재는 아니었다. 그는 고향 선배인 궁정화가 바이에와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그를 통해 당대 최고의 화가 멩스(1728∼1779)와 만나면서 전기를 맞는다.
멩스는 당시 석조건물 벽을 장식하던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인 칼톤 그리기 작업을 알선해주었고 고야는 그 일로 이름을 떨치더니 마흔 셋에 궁정화가가 된다. 그는 모델을 한번만 보고서도 완벽하게 그려낼 정도로 최고의 초상화가가 돼 있었다. 고야는 나이가 들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해 60대에 절정을 이룬다.
그는 조국 스페인이 갈수록 반동화하자 죽음을 앞둔 여든에 프랑스 보르도로 망명, 쓸쓸히 죽지만 망명 직전까지는 궁정화가로 일했다. 안정된 수입 때문이었다.
궁정화가가 될 당시 이미 계몽주의에 흠뻑 취해있던 그는 직업으로 보면 어용이 분명했지만 그림에 비판정신을 듬뿍 담아냈다. 직접적인 계기는 없었다. 정치 결사체에서 활동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혁명에 공감하던 스페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눈을 떴을 뿐이다.
고야는 평생 1,870점이라는 방대한 그림을 남겼는데 당대 현실을 다룬 것만도 900점에 이른다. 1797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동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는 마녀와 악마에 대한 미신에 사로잡힌 스페인의 풍조나, 귀족과 성직자의 타락상을 고발한다. 그들을 당나귀와 괴물로 표현하고 그런 당나귀나 괴물을 짊어지고 비틀거리는 민중의 고통을 묘사했으며 '주둥이만 까진' 지식인과 의사를 비난했다.
1808년에는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하고 민중을 학살한다. 그러자 시민봉기가 일어나고 6년간 독립전쟁이 계속된다. 이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고야는 1810년부터 6년간 간결하면서도 음울한 주석을 달아 '전쟁의 참화'라는 판화집을 만든다. 만년에 제작한 'C화집'에서는 부정적인 인간상과 성직자를 고발하고 '제 자식을 잡아먹는사투르누스'에서는 먹고 먹히는 권력의 세계를 풍자했다.
이런 그림 속에서 사람은 팔 다리가 잘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참혹한 고문에 신음한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는 고야를 괴물이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저자는 고야가 괴물이 아니며 다만 괴물을 그렸을 뿐이라고 옹호한다. 괴물은 고야가 아니라 더러운 권력이었다. 고야는 그런 괴물을 증오했고 그것이 없어지기를 갈망해 괴물을 그렸다.
그러면 저자는 고야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고야 같은 화가가 드물다. 뱀이 좋아 뱀을 그리는 화가는 있어도 괴물을 쫓아내고자 괴물을 그리는 화가는 보기 어렵다. 현실을 괴물로 보고 부정하는 '참된 예술가'는 드물고, 괴물 같은 현실을 긍정하는 '괴물 예술가'들이 판을 친다."
저자는 우리에게 화가, 아니 예술가는 당대의 현실에 눈뜨고 그것을 작품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려 한다. 그러나 구호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야의 그림은 목소리가 분명하면서도 예술성이 높다.
저자는 고야를 제대로 알려면 그가 그린 괴물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며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박 교수는 고야가 1808년 5월의 시민봉기를 그린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시페 비오 언덕의 총살'이 80년대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한반도의 학살'과 더불어 국내 반입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들려주면서 우리 문화의 획일성을 개탄한다.
저자는 법학자이지만 고교 시절 미대 진학을 꿈꾸었을 만큼 미술에 관심이 많다. 전공을 넘어서는 저자의 예술적 탐색이 돋보인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