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데오다와 투명함'이 '성배(聖杯)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4월 출판된 뒤 학계와 언론의 이목을 끌고 있다. 저자 미셸 징크는 프랑스 학계 최고의 명예인 학술 회원일 뿐 아니라, 학문의 전당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중세 불문학 교수이다. 소르본 대학에서 중세 불문학을 강의하던 시절부터 어렵고 거리감 느껴지는 옛 문학을 일반인들도 저렴한 가격에 접근할 수 있도록 원어에 해석을 붙여 문고판으로 편찬해왔다.그는 연구서 출판 외에 현대 불어로 중세 작품을 풀어 써 선인들의 삶과 정신을 전하는 데 일조해왔다. 1998년 출간한 '사랑의 제 삼자, 음유시인들의 소설'이 개작의 첫 시도였다. 이듬해에는 35편의 중세 콩트를 모아 '노트르담의 음유시인'을 냈는데 책에 나오는 작품의 대부분을 동화로 편집해 올해 5월 '중세의 콩트'라는 제목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데오다와 투명함'은 단순한 풀어쓰기 작업이 아닌 징크의 창작품이다. 서양 중세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배(聖杯) 찾기가 주제이고, 유명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중세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신의 선물'을 뜻하는 데오다라는 인물이 나온다.
성배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고, 조셉 다리마시가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의 피를 받아 보존했던 그릇이다. 12세기부터 서양에서는 신의 깊은 비밀이 간직돼 있는 성배 찾기를 주제로 한 소설이 유행하는데, 프랑스의 대표적 중세 소설가 크레티엥 드 트로와(1140∼1190)의 '페르스발'은 현대에 연극과 영화로 각색돼 더욱 유명해졌다.
데오다는 아더왕을 따르는 서출 출신 기사의 둘째 아들로, 빛나는 기사들 틈에서 존재조차 알려지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애송이다. 아더왕은 세상의 모든 것에 의미를 잃고 우울한 날들을 보내다가, 성직자들의 조언에 따라 성배를 찾을 것을 결심한다. 유명한 기사들이 아니라 시종인 데오다의 형을 동반인으로 선택하는데, 그날 밤 그는 암살된다. 데오다는 형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복수하기 위해 떠난다. 성배를 찾아 나선 페르스발 같은 유명한 기사들, 숲 속의 요정들과 속세를 피해 사는 은둔자들을 만나는 등 모험을 겪으며, 형의 죽음과 자신의 혈통에 얽힌 비밀을 발견한다.
데오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모두에게 가장 가까이 존재하듯이, 인간은 명성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투명함으로도 존재한다는 삶의 지혜를 모험에서 터득한다. 이름난 기사들이 아니라 가장 낮은 신분의 데오다가 보이지 않는 성배를 찾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중세인의 정신에 충실하면서 성배 이야기를 현대화시킨 수작으로 평가된다.
조혜영 재불 번역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