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7일 평양에서 열릴 북일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할 것임이 분명해졌다.13일 뉴욕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북한측에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이 대화 의지 메시지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회담 상대가 김 위원장인 만큼 이는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북한측은 이미 지난달 25일 평양에서 열렸던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를 위한 외무 당국자 협의에서 일본측에 북미 간 메신저 역할을 요청한 바 있다. 북한의 외교 실력자인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은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에게 "미국과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며 "일본이 미국에 이러한 우리 입장을 잘 설명해 영향력을 행사해주기 바란다"고 밝혔었다.
김 위원장은 북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전달하는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에 대한 답신 형식이든, 일본에 북미 대화의 중개를 다시 요청하는 형식이든 북미 관계 개선에 관한 생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의 첨예한 관심사인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문제가 북일 정상회담에서 중요 의제가 될 것이 확실해 이 문제에 대한 북일 간의 합의 수준 자체가 미국이 북미 대화를 재개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 재료가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은 물론 재래식 전력에 대한 우려까지 밝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는 이러한 군비삭감이 필수적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
북한의 구체적인 변화가 없는 한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신중한 태도와 북한에 대한 불신감이 여전함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세우는 압박전략과 특사 방북 등 대화 가능성을 양손에 들고 저울질하며 북일 정상회담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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