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에 신도시를 개발한다는 겁니까." "경기도도 신도시를 조성한다고 발표하고 건설교통부도 개발한다는데, 그러면 신도시가 7∼8개 생기는 겁니까." 12일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경기 안양시 인덕원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만난 정모(39·여)씨가 기자에게 되물은 질문이다.아파트값 폭등세를 잡기 위한 신도시 개발론이 고개를 들면서 신도시 입지가 중구난방식으로 튀어나와 수도권 주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신도시 후보지로 입소문이 난 지역은 벌써부터 투기 조짐이 일어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경기도, 건교부 신도시 후보지 제각각
신도시 개발론이 대두된 것은 3일 경기도의 4개 신도시 건설계획안이 발표되면서부터. 경기도는 서울의 주택수요 분산과 강남 집값 상승 억제 등을 위해 과천, 안양(인덕원), 판교, 성남 등 청계산 주변지역에 총 1,500만평 규모로 24만 가구(72만명)를 수용하는 신도시 4곳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한현규(韓鉉珪) 경기도 정무부지사는 "난개발과 집값 상승을 막고 인구 증가를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이며, 4개 신도시는 교육, 환경, 업무시설 등을 갖춰 강남에 버금가는 신도시로 개발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경기도가 발표한 4개 신도시 지역은 대부분 그린벨트에 묶여 있는데다, 행정구역상 서울시 지역이 280여만평에 달해 당초 안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인 상태.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의 신도시 개발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던 재경부, 건교부 등 관련 정부부처들이 다음날 강남을 대체할 신도시 2∼3곳을 개발한다고 발표하면서 돌연 입장을 바꿔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건교부는 개발 예정지와 관련,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에 입지 선정 작업을 맡겨 놨으며, 현재까지 후보지로 결정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일각과 전문가 등 사이에서는 김포, 성남, 고양 등이 유력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엔 외곽신도시, 환경단체 등 강력 반대
이런 와중에 건교부 산하 국토연구원이 향후 10년간 수도권 주택 및 택지 확보를 위해 서울 30㎞외곽에 4개 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부처, 경기도, 국토연구원이 내놓은 신도시 후보지 만으로도 수도권이 '신도시 천지'가 된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신도시 개발이 '그들만의 게임'으로 전개되면서 환경단체와 해당 지자체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경정의 시민연대는 최근 "신도시 개발정책은 수도권 과밀억제 노력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과천시, 성남시 등도 발끈하고 나섰다. 성남시 관계자는 "신도시가 건설되면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교통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밖에 없다"며 "사업이 추진돼도 건축승인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제동을 걸겠다"고 강경입장을 밝혔다.
신도시에 대해 한나라당도 "대선을 불과 3개월여 앞두고 정부가 굵직한 정책을 서둘러 끝내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서 정치권에 까지 불길이 번진 상태.
▶개발 후보지 땅값 들썩, 값 올라
신도시 후보지가 확정조차 되지 않았지만 유력 후보지로 꼽히는 지역은 벌써부터 '복부인'이 몰리면서 땅값이 치솟고 있다.
과천시 A부동산 관계자는 "경기도가 청계산 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땅을 보러 온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경기도 발표 이후 20%가량 가격이 올랐다"고 귀띔했다.
안양시 인덕원의 한 부동산 중개사는 "과천이나 인덕원 주변의 좋은 땅은 중개소에서 직접 사들인다"고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신도시개발 정책이 치솟는 집값을 잡지 못하면서 역으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양승우(梁承雨) 서울시립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정부와 경기도가 당장 아파트값 안정만을 위해 충분한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해 혼란만 일으키고 있다"면서 "신도시 건설은 최소 10년 이후의 주택사정 등을 고려해 신중히 건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 전문가 의견/교통체증·先입주·부실시공 "3不 되풀이 말아야"
수도권에 2∼3개의 신도시를 추가 건설하는 계획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가운데 관계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신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3가지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도시 '3불(三不)'은 베드타운화로 인해 날로 악화해가는 교통체증 도시기반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先) 입주 바다모래의 과다사용 등으로 인한 부실시공 등.
분당신도시의 당초 상업시설은 전체 면적(590만평)의 11%를 차지했다. 강남지역의 기업들을 상당수 분당으로 이전시켜 완전한 자급자족 도시를 만들기 위한 복안이었다. 그러나 입주가 시작된 지 6∼7년이 지나도 상업시설 중 70%가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일산, 평촌 등 다른 신도시도 같은 실정이다. 경원대 이창수(李昌洙·도시계획)교수는 "판교신도시 역시 벤처시설과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분양률이 저조할 경우 이 마저 아파트로 분양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분당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통망과 도시기반시설이 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입주도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분당입주자대표자협의회 고성하(高晟河) 회장은 "분당에 입주가 시작된 지 8년 만인 2000년에야 서울로 연결되는 고속화도로가 완공됐으며 왕십리까지 연결될 예정인 지하철의 경우 착공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분당지역 한 부동산 관계자는 "신도시 건설당시 문제가 된 바다모래 사용으로 인한 건물부식현상이 일부 신도시 아파트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충분한 정책적 고려없이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남발할 경우 또 다시 자재공급 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게 돼 부실신도시를 양산하는 누를 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선진국 신도시 건설 사례
프랑스와 영국, 일본 등 선진외국에서도 신도시 건설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불과 4∼5년 만에 졸속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소 10∼30년에 걸쳐 조성하고 규모도 크다. 이에 따라 충실한 도시계획기반 하에서 자족형 신도시로 건설되고 있는 편이다.
프랑스는 파리 수도권 인구가 850만명을 넘은 시기인 1960년대 후반에 신도시 건설을 시작했다. 세르지 퐁트와즈, 에브리, 믈램 세나르, 마른느 라발레, 샘 캉템 앙 이블린 등 5개로 이들 신도시는 파리 도심에서부터 25∼30㎞ 거리.
최대인 마른느 라발레는 4,530만평이고 에브리가 1,240만평으로 가장 작지만 분당신도시의 2배 규모다.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사업을 시작했으나 아직도 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1900년대 초 런던 인구가 최고조에 달했던 영국의 경우 런던 주변에 20년대부터 웰윈, 레치워스, 할로우, 밀턴 케인즈 등 4개 신도시를 조성했다. 이들 신도시는 런던 도심에서 30∼72㎞ 반경에 있다. 규모는 540만∼2,900만평. 전원도시 웰윈의 경우 20년에 사업을 시작, 65년에 완공됐고, 레치워스의 경우 33년에 시작, 60년에 완료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급증하는 런던의 인구 분산을 위해 할로우와 밀톤 케인즈를 건설했다.
일본의 경우는 도쿄 주변에 신도시가 무려 8개나 건설됐다. 다마(多摩), 치바(千葉), 쓰쿠바(筑波), 고호쿠(港北), 마쿠하리(幕張)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도쿄 도심에서부터 25∼60㎞ 주변에 포진해 있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인 60년대부터 신도시 건설을 시작했다. 60년대에 건설을 시작한 경우는 760만∼1,000만평으로 대형이며, 70년대 건설을 시작한 것은 120만∼200만평 규모로 작은 편이다.
국토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난개발을 막고 계획적인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프랑스 등의 사례를 따라 오랜 기간에 걸쳐 대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해야한다"며 "최근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2∼3개의 신도시 건설은 신중하게 추진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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