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정치구조에서 최고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이 권력에 대해 직접적인 욕망을 갖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생각하면 그 일이 욕망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권력의 획득을 압도하는, 민족의 미래에 관한 꿈이 포진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꿈이 선행해 있을 때 권력에 대한 욕망은 정당화하지만 그런 꿈이 없거나 단지 겉치레로만 제시될 때 권력에 대한 욕망은 매우 구차스러운 것이 되어 급기야 국민의 숨통을 죄는 암적 존재로까지 되는 수가 많다.그 꿈은 시대에 따라 여러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 이를테면 오래 전, 김대중 대통령이 후보이던 때,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되어 있던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 감방 안에서 "김일성과 수 없이 바둑을 두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을 나는 매우 인상적으로 들었고 이 말로 인하여 나는 그가 대권에 도전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에 돌이켜 볼 때 그는 남북문제에 관한 한 상황을 크게 진전시켜 놓았다. 그것은 옥중에서도 진멸되지 않았던 그의 꿈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또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관련된 쿠데타와 엄청난 비자금 수수 사건을 단죄한 것, 그리고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한 것 등은 김영삼 전대통령처럼 옳은 것에 대한 굵직한 신념과 특유의 강단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경우에도 그런 꿈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비록 불법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기는 하였지만 불평불만에 가득 차서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고 푸념하던 청년 장교시절의 혼돈한 꿈과 욕망에서 훗날 그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새마을운동과 중화학공업 육성 등이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꿈이 일본의 근대화 구상을 뒤늦게 모방한 것이며 비민주적, 군국주의적이라는 비판도 그런 꿈과 실천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이러한 꿈을 판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이제는 여러 사람의 대통령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정치적 경험이 쌓이면서 한 사람의 대통령이 가진 자질과 안목과 포부가 한 시대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세월이 변하여 조국근대화나 민주화를 부르짖던 때와는 역사의 조건이 크게 다르다. 한마디로 어떤 기치 하에 국민을 단합 시키고 어떤 모습으로 국가의 지향을 가시화 시킬 것인지가 어느 때보다 어려워 졌다는 말이 된다.
나는 새로 선출될 대통령은 오랜 세월에 걸친 경제성장 추구 과정에서 황폐화된 국민의식을 되살리는 문제에 대해 높은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쉽게 가질 수 있는 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치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꿈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다. 공산체제 몰락 후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던 반체제 작가 출신의 바츨로프 하벨 대통령은 '진실 속에서의 삶'을 정치의 기치로 내세웠다. 그는 정치는 술수라는 통념을 거부했고 정치가 '자신들의 삶을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소망을 존중'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벨은 그 후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체코공화국의 대통령에 다시 선출되었고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1998년 재선되어 지금 임기 말에 있다. 10년이 넘는 재임기간을 통해서도 그가 기약한 '존엄성과 유대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세상은 여전히 미완의 목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성의 진실에 기초한 정치라는 그의 남다른 꿈은 신생 체코가 동구권의 가장 성공적인 변화 사례로 평가 받는 데에 분명한 기여를 하였을 것이다. 먼 나라 체코에서나 이 땅에서나 확신에 찬 꿈은 반드시 새로운 현실을 낳기 때문이다.
이수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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