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작별/"우리 자매에게 세상의 아픔따윈 없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작별/"우리 자매에게 세상의 아픔따윈 없어"

입력
2002.09.12 00:00
0 0

"수영할 줄 아세요." "음, 왜 그러니?" "우리 언니가 곧 바다로 뛰어들 거예요." (풍덩…).우울증이 도지면 상습적으로 바다나 강, 수영장에 뛰어드는 언니, 그 버릇에 길들여져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맹랑한 동생. '작별'은 격정적인 언니와 깜찍한 소녀의 귀엽고도 슬픈 성장기이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합작 영화 '작별'(El Faro Del Sur·남쪽의 등대)은 한국영화 '약속'이나 '편지' 같은 멜로 영화가 아니다. 더구나 남녀간의 연애를 표현하는 것이 멜로라면, 이 영화는 명백히 멜로가 아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찡한 신호를 보내는 것은 멜로 영화 못지 않다.

스페인에서 살다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행복한 가족. 그러나 교통사고가 일어나 현장에서 부모는 사망하고, 큰 딸 메메 역시 다리를 크게 다쳤다. 허벅지에는 커다란 상처가 생겼고, 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린다. 세상에 단 둘이 남은 자매는 언제나 서로를 놀리기에 바쁘다. 동생 아네타는 "절름발이"라고 언니를 놀리고, 언니는 동생을 "안경잡이 괴물"이라고 응수한다. 자매에게 언니의 장애는 예의를 차려 일부러 모른 척해야 하는 은폐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렇게 둘로서 완벽했다.

메메는 첫사랑으로 남기고 싶은 남자가 다리의 상처를 보고 기겁을 하는 바람에 큰 상처를 받는다. 동생을 데리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고모들이 살고 있는 우루과이 벨른으로 거처를 옮긴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통증을 느끼고, 폐가 하나 뿐인 병약한 메메는 자신의 격정이 현실속에서 늘 좌절되자 유부남과 사귀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옷이나 장신구를 만드는 데 각별한 재주를 갖고 있던 메메는 디자이너로 성장하지만, 아이조차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져 동생 아네타가 자라 연애를 하고 임신을 했을 무렵,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들의 단란했던 시절에서 아네타의 첫 키스 장면까지 둘의 소중한 기억을 담은 앨범 하나만을 남긴 채.

아네타의 유년시절을 연기한 히메나 바론은 아르헨티나 비평가협회가 주는 신인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애늙은이 같으면서 천진난만한 역할을 맛깔스럽게 소화했다. 꼬마의 연기는 언니 역을 맡은 잉그리드 루비오( '택시'로 데뷔)의 연기를 리드할 정도. 그에 비하면 메메가 그토록 절망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의 단서는 심도가 없고, '박하사탕'의 문소리에 비하면 잉그리드 루비오의 장애인 연기는 아마추어에 가까워보인다.

그렇더라도 세상으로부터 받는 다양한 아픔을 경쾌하게 삶의 한 방식으로 끌어안는 소녀들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즐겁다. 페레즈 프라도의 '맘보 No.5', 영화 '노팅힐'에서도 쓰인 'Ain't No Sunshine When She Is Gone'등 영화 속 음악도 또 다른 재미. 아르헨티나 출신 여성감독 에두아르도 미뇨냐의 영화로 1998년 스페인 고야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27일 개봉. 18세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